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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다찌집'은 뭐야?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24)] 통영의 명물 <다찌집>의 유래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한국의 나폴리라 말하는 통영에는 독특한 음주 문화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속칭 '다찌집'이라 하는 재미난 술집이 있습니다. '다찌'라는 말은 왜색 문화가 강한 이곳인지라 친구를 뜻하는 일본어 (도모다찌-友達)에서 온 듯합니다. 이곳 다찌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겨 찾는 곳으로 해질녘 퇴근시간부터 영업을 하는데 손님이 많은 집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 -다음- 

어느 누리꾼이 자신의 동네 통영에만 있는 “다찌집”에 대한 자랑 겸 소개해놓은 글을 읽었다. 다찌를 일본말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찌(友達、ともだち,tomodachi)의 다찌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통영에 살면서도 다찌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다니 안타깝다.
 

   
▲ 일본 나라현 오오미야 역 앞의 다찌집 간판

‘다찌집’이란 다찌+집으로 이뤄진 말로 ‘다찌’는 ‘다찌노미’를 줄인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 보면 “たち‐のみ【立飲み】 立ったままで飲むこと。”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를 번역하면, “다찌노미 : 선 채로 마시는 일”이다. 간이역의 우동집도 아니고 선 채로 술을 마시다니 무슨 말인가 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들녘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도 아닌데 도심의 술집에서 선채로 술을 마신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화다.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뿐인 술상이라도 우리겨레는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반듯하게 술상을 받아 마셨다. 

서서 후딱 술 한 잔 마시는 ‘다찌노미’ 말고도 일본에는 ‘다찌구이(立食い)라고 해서 역전 같은 곳에 보면 우동이나 소바 등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다찌노미”나 “다찌구이”나 모두 서다라는 일본말 다찌(立ち,tachi)가 붙는다. 이 말이 붙으면 ‘임시로, 얼른, 후다닥 먹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제대로 된 술상을 받으려면 ‘서서’ 받을 수는 없다. 오랜 전쟁을 겪거나 경제건설의 일꾼으로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앉아서’ 먹는 게 정상이다. ‘다찌(서서)’ 받아먹는 술 한 잔에 안주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통영에서 쓰게 된 ‘다찌’라는 말은 고기잡이를 나가기 위해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받아 마시듯 얼른 받아 마시고 일터로 나가면서 쓰기 시작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재미 난 것은 본래 ‘다찌’가 뜻하는 것보다 훨씬 음식이 걸지고 푸짐하다는 것이다.

 

   
▲ 통영의 다찌집 간판들

몇 해 전 통영의 다찌집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보통 음식점에 가면 갈비탕이라든가 닭볶음이라든가 해서 콕 찍어 주문하는 데 견주어 통영 다찌집의 차림표는 따로 있지 않았다. 외지인이 볼 때는 모든 것을 주인의 맘에 맡기는 듯 했다. 이런 스타일이라면 일본의 요요기가 생각난다. 

일본 동경올림픽이 있었던 요요기 국제청소년센터 뒷문을 빠져나가면 그저 수수한 밥집처럼 생긴 식당이 하나 있다. 이곳은 밥도 팔고 술도 파는데 재미난 게 차림표가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맥주든 일본술이든 한 잔 시키면 안주는 그날그날 주방장의 형편에 맞춰 나온다. 

생선구이가 나올 때도 있고 무조림이 나올 때도 있다. 마치 통영의 다찌집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통영쪽이 훨씬 음식의 가짓수가 많다는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제 통영의 “다찌”는 그 어느 지방에도 없는 독특한 술집(밥집)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다찌’의 유래라도 알고 쓰면 좋을 일이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