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한국의 나폴리라 말하는 통영에는 독특한 음주 문화가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속칭 '다찌집'이라 하는 재미난 술집이 있습니다. '다찌'라는 말은 왜색 문화가 강한 이곳인지라 친구를 뜻하는 일본어 (도모다찌-友達)에서 온 듯합니다. 이곳 다찌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겨 찾는 곳으로 해질녘 퇴근시간부터 영업을 하는데 손님이 많은 집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 -다음-
어느 누리꾼이 자신의 동네 통영에만 있는 “다찌집”에 대한 자랑 겸 소개해놓은 글을 읽었다. 다찌를 일본말 친구를 뜻하는 도모다찌(友達、ともだち,tomodachi)의 다찌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통영에 살면서도 다찌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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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라현 오오미야 역 앞의 다찌집 간판 |
‘다찌집’이란 다찌+집으로 이뤄진 말로 ‘다찌’는 ‘다찌노미’를 줄인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 보면 “たち‐のみ【立飲み】 立ったままで飲むこと。”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를 번역하면, “다찌노미 : 선 채로 마시는 일”이다. 간이역의 우동집도 아니고 선 채로 술을 마시다니 무슨 말인가 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들녘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도 아닌데 도심의 술집에서 선채로 술을 마신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화다.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뿐인 술상이라도 우리겨레는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반듯하게 술상을 받아 마셨다.
서서 후딱 술 한 잔 마시는 ‘다찌노미’ 말고도 일본에는 ‘다찌구이(立食い)라고 해서 역전 같은 곳에 보면 우동이나 소바 등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다찌노미”나 “다찌구이”나 모두 서다라는 일본말 다찌(立ち,tachi)가 붙는다. 이 말이 붙으면 ‘임시로, 얼른, 후다닥 먹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제대로 된 술상을 받으려면 ‘서서’ 받을 수는 없다. 오랜 전쟁을 겪거나 경제건설의 일꾼으로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앉아서’ 먹는 게 정상이다. ‘다찌(서서)’ 받아먹는 술 한 잔에 안주가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통영에서 쓰게 된 ‘다찌’라는 말은 고기잡이를 나가기 위해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받아 마시듯 얼른 받아 마시고 일터로 나가면서 쓰기 시작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재미 난 것은 본래 ‘다찌’가 뜻하는 것보다 훨씬 음식이 걸지고 푸짐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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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의 다찌집 간판들 |
몇 해 전 통영의 다찌집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보통 음식점에 가면 갈비탕이라든가 닭볶음이라든가 해서 콕 찍어 주문하는 데 견주어 통영 다찌집의 차림표는 따로 있지 않았다. 외지인이 볼 때는 모든 것을 주인의 맘에 맡기는 듯 했다. 이런 스타일이라면 일본의 요요기가 생각난다.
일본 동경올림픽이 있었던 요요기 국제청소년센터 뒷문을 빠져나가면 그저 수수한 밥집처럼 생긴 식당이 하나 있다. 이곳은 밥도 팔고 술도 파는데 재미난 게 차림표가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맥주든 일본술이든 한 잔 시키면 안주는 그날그날 주방장의 형편에 맞춰 나온다.
생선구이가 나올 때도 있고 무조림이 나올 때도 있다. 마치 통영의 다찌집 같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통영쪽이 훨씬 음식의 가짓수가 많다는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제 통영의 “다찌”는 그 어느 지방에도 없는 독특한 술집(밥집)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다찌’의 유래라도 알고 쓰면 좋을 일이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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