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일본인들이 앓고 있는 병중에는 기미가요신경증(君が代神經症)이란 것이 있다. 정말 희한한 병이다. 우리말로 하면 ‘애국가부르기 공포증’ 쯤이라고 번역 할 수 있다. ‘애국가부르기 공포증이라니?’ 쉽게 말해 입학식과 졸업식 같은 때에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로 고민하는 선생들이 겪고 있는 병이 이른바 ‘기미가요신경증’이다. 어느 쪽이냐 하면 부르고 싶지 않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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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미가요 거부자의 추이(왼쪽) 일장기(히노마루) 게양을 하고 입학식을 하는 모습 |
일본의 선생들이 겪고 있는 ‘기미가요신경증’은 동경도교육위원회(東京都敎育委員會)가 2003년 10월 23일 이른바 <10.23 通達>을 발표한 이후에 생긴 병으로 올해는 그 10년째 되는 해이다. 츠타츠(通達, circular notice)란 국가기관의 행정지침을 말한다. 행정지침 가운데는 ‘입학식, 졸업식에서 국기게양 및 기미가요 제창을 실행 할 것’ 이란 조항이 있다. 더 나아가 ‘국기는 식장의 무대 중앙정면에 게양한다. 식장에서 교직원은 지정된 좌석에서 국기를 향해 기립하고 국가를 제창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는 그 책임을 묻는다.’와 같은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당연시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약간 의아스런 느낌이 들것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사항을 가지고 국가기관이 행정지침으로 선생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교사들이 입학식 등 각종 행사만 되면 겪게 되는 ‘기미가요신경증(君が代神經症)’은 2013년 올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사라지면 안 될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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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노믹스와 파시즘을 다룬 '임팩션' 잡지 189호 2013.4.5 |
다나카(田中聰史) 씨는 <Impaction,2013,189호>에서 일장기, 국가제창 불기립 저항 10년(日の丸, 君が代 不起立 抵抗10年)’ 이란 글을 통해 그간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글에는 자신이 지난 10년간 각종 행사 때 이를 위반하여 이미 세 번이나 ’행정처분‘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말이야 국기경례, 국가제창 거부가 쉽지만 실제 행사장에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이 모두 일어서서 기미가요를 부르는데 혼자 앉아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나카 선생은 왜 이러한 기미가요제창을 저항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일본의 패전과 관련이 있다. 알다시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고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 나라이다.1945년 7월 26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 포츠담선언에 보면 일본은 13개 조항에 이르는 사항을 지키기로 하고 두 손을 깨끗이 들었다. 몇 개를 보자.
“향후 일본은 군국주의 배제, 일본군의 무장해제, 군수산업 금지,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 카이로선언 실행과 일본 영토 한정, 전쟁 범죄자 처벌, 한국의 독립보장” 등이 주요 골자였다. 여기서 “군국주의 배제”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앞으로 두 번 다시 군사력을 키워 전쟁을 일으키면 가만 안두겠다는 뜻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침략, 2차세계대전 등 일제는 기미가요와 일장기를 앞세우고 광란의 질주를 해왔기 때문에 패전 후 일본에서는 일장기를 떳떳이 게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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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국주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꿈꾸지 않겠사옵니다. 무조건 항복이옵니다." 동경만 미주리선상에서 시게미츠 외무대신의 항복문서조인(1945.9.2) |
전쟁은 남도 해치지만 자국민도 해치는 일이라 일본국민 또한 전쟁이라면 넌더리가 난 사람들이다. 따라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와 일장기는 그간 공식 행사장에서 떳떳하게 사용하지 못했고 그것은 어쩌면 일본 사회의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일장기를 내걸고 기미가요를 부르더니 급기야는 아베신조(安部晉三) 수상을 포함한 정부 관료들이 “침략의 역사는 없다. 침략이란 말은 아직 학계에서도 정의 되지 않은 말이다”같은 말로 일본국민을 선동하고 있어 한국의 저항은 물론 미국에서조차 따돌림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미가요를 부르고 일장기를 꼿꼿이 세운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군국주의를 부활시키자는 의도이다. 다나카 선생 같은 의식 있는 일본인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기미가요신경증(君が代神經症)’을 앓고 있는 교사들은 일본의 마지막 양심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관서학원대학 (關西學院大學) 교수인 정신과 의사 노다(野田正彰) 씨는 ‘기미가요신경증(君が代神經症)’을 앓고 있는 교사 중에는 “목에서부터 식도에 걸쳐 굵은 대못이 찌르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호소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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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의 평화를 깬 일본은 전쟁의 기억을 벌써 망각했는가! (2차세계대전 사진) |
지금 일본에 우익들이 날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군국주의 부활을 반대하는 양심 있는 소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국가제창과 국기경례’를 거부하는 일이 오늘도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작지만 일본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집단광기 사회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는 ‘히노마루 기미가요 부당처리 철회를 요구하는 피처분자의 모임 <日の丸, 君が代 不當處理撤回を求める被處分者の會>’에 힘찬 응원의 손뼉을 보낸다.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