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그 조선의 병력으로는 현재 그 어느 나라도 상대할 수 없어. 조선이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교묘한 줄타기뿐이지. 그러나 그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교(沙橋)를 놓는 것과 다름이 없어. 우린 내부적으로 일당 백, 일당 천의 강한 군사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리고 외교적으로는 적을 이용하여 적을 쳐야하는 계략만이 우리가 새로운 하늘을 제대로 열게 되는 길이다.”
김충선은 이순신의 분석을 부인하지 않았다. 본래 이순신은 문관이 되려했던 무관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즐겨 책을 읽었으며 벼슬에 올라서도 서책을 읽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이순신은 무관의 신분이 되자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오자병법(吳者兵法)’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누더기가 되도록 읽고 외웠다. 또한 유성룡으로부터 넘겨받게 된 병서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을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습득하였다. 김충선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장군의 지모(智謀)가 가히 공명(孔明)에 가깝습니다.”
이순신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애대감이 계시는데 감히 내가 제갈공명을 자처하겠는가?”
서애 유성룡은 조일전쟁 내내 탁월한 용병술(用兵術)로 침몰하는 조선을 간신히 유지시켜온 전략가(戰略家)였다. 그는 조선의 위기를 예견하고 방비했던 유일한 목민관(牧民官)으로 오늘날의 이순신을 존재하게 한 비상한 문인이었다. 일개 군관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단계를 무시한 파격적 등용을 감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유성룡은 해냈다. 자신의 안목대로 이순신을 불차탁용(不次擢用) 하였다. 그 결과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일본의 전력을 맞이하여 그나마 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분이 아니시라면 어찌 지금의 조선이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충선아, 너도 인정 하는구나.”
“물론입니다. 유성룡대감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지요.”
이순신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참으로 충신이시지. 놀라운 학식에 깊은 사고(思考)를 지니시고 남다른 통찰력(通察力)에 과감한 결단까지 두루 겸비한!”
이순신과 김충선은 서애 유성룡에 대한 흠모(欽慕)와 경외(敬畏)를 이야기 하며 길을 걸었다. 그때 그들의 먼발치의 등 뒤로 역시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마가 좁고 하관이 빠른 볼품없는 사내는 손에 칼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제법 훤칠한 생김새에 갓과 도포를 착용하고 있는 양반 차림이었다. 그 인물은 바로 사헌부 소속의 지평 강두명이었다.
“나리! 여기에 글귀가?”
칼을 쥐고 있는 작자가 이순신과 김충선이 각기 긁적인 땅바닥의 글자를 가리켰다. 강두명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글을 모르는지 칼잡이가 물었다.
“이게 무슨 글입니까요?”
“여진과 왜적이라?”
“넷? 북방의 여진족과 일본 놈들?”
“글쎄다.”
“하여간 수상하긴 한 것이지요? 이 꼭두새벽에 그 놈들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강두명은 이미 시야에서 벗어난 이순신과 김충선을 서둘러 뒤따랐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