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유광남 작가] 칼잡이는 땅바닥의 글귀를 슬쩍 훑어보더니 재빠르게 강두명을 앞질렀다.
“소인이 글을 읽는 재주는 없지만 척 보니까 제법 글자에 힘이 넘치게 들었습니다.”
강두명은 어이가 없었다.
“허튼 수작 말고 미행에 만전을 기하라.”
“염려 놓으십시오. 그게 바로 소인의 전문 아닙니까?”
칼잡이가 히쭉 웃으며 빠른 걸음을 걸었다.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고개를 돌려서 다시 한 번 그들이 쓰고 간 땅바닥의 글자를 음미했다.
‘이래서 성상께서는 이순신에 대하여 안심을 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 * *
“......!”
이순신과 김충선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충선은 가까스로 벌어진 입을 다물며 이순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습니까?”
이순신의 경직된 얼굴이 순간적으로 풀어졌다.
“기다리고 계셨다니 어서 들어가야지.”
서애대감이 가장 총애하는 셋째 아들 유진이 문간에 서 있다가 그들을 안내했다.
“이리로.”
몸가짐이 바르고 태도가 의연했다. 눈매는 총기가 어려 있고 코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입술은 적당히 도톰하고 붉었으며 전체적 얼굴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미남자 풍이었다. 김충선이 그 약관(弱冠)의 도령에게 물었다.
“대감께옵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맞는가?”
유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삼도수군통제사이신 이순신장군과 항왜장수 김충선장군이 아니시옵니까?”
김충선이 재차 이순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애 유성룡이 그들이 찾아 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참!”
김충선이 혀를 차자 유진이 살짝 고개를 돌리며 설명했다.
“아버님께서는 귀한 손님들이시니 소자더러 의관을 바르게 하고 정중히 모시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파루(罷漏=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으로 새벽 4시에 침)가 치자마자 대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진은 두 개의 대문을 지나 사랑채로 그들을 안내했다. 달빛은 밝았고 마주치는 하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김충선은 이 저택을 몇 차례 은밀히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구조를 알고 있었다.
“아버님, 모시고 왔습니다.”
유진의 음성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랑방의 문이 열리면서 서애 유성룡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서들 오시오.”
이순신이 고개를 숙였다.
“대감에게 이토록 심려를 끼치니 참으로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장군, 그런 말은 이 사람에게 섭섭하오. 우리에게 그런 격식은 어울리지 않소이다. 자, 어서 올라오시오. 김장군도!”
** 유 광 남 :
서울 생으로 대중성 있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역사와 팩션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학에서 스토리텔링을 5년 간 강의 했으며 조일인(朝日人) ‘사야가 김충선(전3권)’ 팩션소설 ‘이순신의 반역(1부)’ 등을 출간 했다. 현재 '스토리 바오밥'이란 전문 작가창작 집단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