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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4대사찰의 하나 금강산 건봉사

비무장지대 안의 절 건봉사 답사기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이 절은 중요함이 여느 절과 다르다. 이미 열성조(列聖朝)의 어필(御筆)을 봉안하였으니, 지금에 미쳐 소생시키고 구제하는 일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 이른바 궁납(宮納)과 잡비(雜費)를 면세(免稅) 받은 전답에서 생산되는 것에 세금이 10배라니 어찌 그런 말을 듣고서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특별히 아울러 탕감하라. 그리고 당해(當該) 궁(宮)에서 만일 다른 방도로 수탈하는 폐단이 있거든 순영(巡營)은 그 사실을 보고하라. 궁납의 폐단이 없어지더라도 관납(官納)의 폐단이 또 생긴다면 바로잡아 개혁한 뜻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는 도백(道伯)이 살피고 신칙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 건봉사 불이문

정조실록에 보면 (26권, 1788) 건봉사에 지운 무거운 세금을 탕감하라는 어명이 눈길을 끈다. 실록에 보이듯 열성조의 어필까지 봉안된 절이니 만큼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강원도 고성군의 건봉사(乾鳳寺)를 찾은 날은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다. 짙푸른 초록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가랑비가 뿌리고 있었다.

   
▲ 1920년대 건봉사 모습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자리한 건봉사는 만일염불결사회, 사명대사와 호국불교, 금강산 신앙, 적멸보궁과 진시 사리, 항일 의병 봉기, 만해 한용운 문학의 산실로 알려졌으며 묘향산 보현사, 계룡산 갑사, 두륜산 대흥사와 함께 ‘한국의 4대사찰’로 꼽히는 유서 깊은 절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의 도량으로 신라시대 발징화상에 의해 중창되어 염불만일 결사가 시작되었으며, 석가 진신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당시 폭격으로 수백 칸에 이르던 전각이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되었고, 휴전 후에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오랫동안 신도들의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해 폐사 위기에 까지 몰리다가 1990년대부터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중창불사에 전력을 다해 민족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사찰로 우뚝 섰다. 그러나 지금도 이곳에 출입하려면 두 곳의 검문소에서 신분증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 능파교 넘어 금강산 건봉사라는 현판이 달린 절의 대문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아도가 절을 짓고 원각사(圓覺寺)라 부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며 고려 태조의 스승인 도선이 왕명으로 원각사를 중수하고 절의 서쪽에 봉황 모양의 돌이 있다하여 서봉사(西鳳寺)라 불렀다. 그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인 1358년에 나옹화상이 중창하고 건봉사(乾鳳寺)로 불렀다.

조선 세조 때는 원당으로 지정되었고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어실각을 건립하도록 한 뒤, 조선시대 내내 왕실의 원당으로 계속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이곳에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는데 본래 통도사에 있다가 임진왜란 중 강탈당한 뒤 이를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아 건봉사에 봉안하게 된 것이다.

   
▲ 만해당 앞의 한용운 시비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다리인 무지개다리인 능파교는 대한민국의 보물 13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20년에 지은 가람의 정문인 불이문(不二門)은 한국전쟁 때 이 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35호로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 일본에서 사명대사가 되찾아온 부처님 치아사리

 염불 소리 가득한 아침 안개가 자욱한 금강산 건봉사 경내를 둘러보자니 1500여 년 전 이 절을 세웠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거세의 인연이 무엇이기에 지척에 금강산을 두고 도 가지 못하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지도 못한 채 동족끼리 철조망을 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금강산 줄기의 건봉사 염불 공덕으로 남북이 화해하여 반목 없이 지내게 되길 불이문을 나오면서 빌고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