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오덕 선생도 착각한 "야채"라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34)]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우리말 살려 쓰기》에서 이오덕 선생은 “강수량 예년의 10%... 농작물 관리 비상 (ㄷ 신문 99.1.6)”의 예를 들면서 강수량은 ‘비온 양’으로 쓰고 ‘농작물’은 일본말이니까 우리말 ‘곡식’이라 쓰자고 했다. 또한 ‘채소’ 또는 ‘나물’ 같은 말을 쓰되 ‘야채’는 일본말이다.” 라고 지적한바 있다. (124쪽, 323쪽)

 

   
 

평생을 교육자로 살면서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올바르게 헤아릴 수 있도록 글쓰기와 바른 우리 말글 지도를 해온 이오덕 선생의 글은 언제보아도 귀감이 된다. 그런데 위글 “야채”가 일본말이라는 것은 조금 맞지 않는 듯 하여 야채의 오랜 기록을 찾아보았다.

 먼저《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보면 “야채(野菜) :「1」들에서 자라나는 나물.「2」‘채소(菜蔬)’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데 풀이말 끝에 “순화”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쓰던 말일을 알 수 있다.

   
▲ 1922년 11월 16일 동아일보 임시 야채시장 기사

 예컨대, 같은 한자말이라도 “추월 (追越): 뒤에서 따라잡아서 앞의 것보다 먼저 나아감. ‘앞지르기’로 순화.”에서처럼 “순화”하라고 한 것은 일본한자말에서 유래한 경우를 나타낸다. (국립국어원은 그냥 순화라고 하지 말고 일본 한자말이라고 밝혀야한다. 국민들은 원래 쓰던 한자말과 일본 한자말의 개념을 잘 모르기에 막연히 ‘순화’라고 하면 혼동하기 쉽다) 

따라서 단순히《표준국어대사전》 풀이만 봐도 “야채(野菜)”가 일본말에서 온 말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명확한 자료는 세종실록 (55권) 1432년 3월 1일 기록에 “매장원(每場院)에 머물렀다. 독(毒)이 있는 나물을 먹고 죽은 사람이 둘이 있으므로, 병조에 명령하여 물고(物故)한 수군(水軍)의 예에 의하여 치부(致賻)하고 복호하게 하였다. 또 두루 군중에 타일러서 이름을 모르는 야채를 먹지 못하게 하였다. (每塲院。 有人誤食毒菜死者二, 命兵曹依物故船軍例, 致賻復戶。又令(編)〔徧〕諭軍中, 勿食野菜不知名者)”라는 기록으로 미뤄 우리나라에도 일찍부터 한자말인 “야채”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국어대사전,日本国語大辞典》에 보면 야사이이치(야채시장, 野菜市)이라고 해서 작가 구니키다독보(国木田独歩)가 쓴 1898년의 《무사시노(武蔵野)》속에 나오는 야채시장(これが小さな野菜市...)을 예로 들고 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채소를 즐겨 먹어 왔던 사람들로서 예부터 배추(하쿠사이), 무(다이콩), 파(네기), 시금치(호렌소), 미나리(세리) 같은 푸성귀를 늘 먹어왔기에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길러 먹어왔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가 되면서 이것을 전문적으로 길러 파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근대 개념의 시장(市場, 이치바)이 생겨나자 “야채시장”이 생겼는데 때마침 조선총독부는 경성에 야채시장 (1920.7.18)을 시작으로 종로 등지에 푸성귀와 과일(과실)을 파는 야사이이치바(야채시장)를 만들게 된다. 이 무렵부터 일본인들이 “야채”라는 말을 많이 쓰자 조선사람들이 이 말을 일본말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채소(菜蔬), 야채(野菜)라는 말을 예전부터 써왔다. 그러므로 야채(やさい ,야사이)라는 말은 추월(追越, 오이코시), 대절(貸切,가시키리), 택배(宅配, 타쿠하이) 같은 일본한자말로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써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채소나, 야채 같은 한자말 보다는 《석보상절》에도 나오는 “프귀(푸성귀)” 또는 "남새"라는 아름다운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는 게 좋다고 본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