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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민마을 "부락" 에서 살아요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35)]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전남의 한 '미니부락'이 행정착오로 빼앗긴 땅을 1년 만에 되찾았다. 68가구, 200여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 신촌부락 주민들이 1915년부터 소유해온 '95년 묵은 땅'의 소유권을 잃은 것은 지난해 2월. 나주시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신촌리(里)' 명의로 확정된 뒤 1944년 분할된 마을 땅 473㎡(143평)에 대해 지난해 2월 나주시 소유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광주 뉴시스 2010,3,28-

 작은 마을이라 하면 될 것을 ‘미니부락’이라고 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부락민을 모아놓고 한바탕 선동 연설을 하였다…(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처럼 ‘부락’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널리 쓰고 있다.

 

   
▲ 오사카 인권박물관에서 펴낸 책

‘부락’이란 말의 정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 .또는 그 마을을 이룬 곳. 마을로 순화” 하라고 적고 있다. 지금은 이 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 앞 길가에 세운 ‘아양부락’처럼 아직도 마을 들머리 (입구)안내판에는 부락이란 말을 여전히 쓰고 있다. 부락민(部落民)이란 말로도 많이 쓰는 이 말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천민집단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1.비교적 소수의 민가가 모여 있는 지구, 공동체로서 모인 지연단체로 마을 단위. 2. 피차별부락이라고 적어놓은 다음 ‘피차별부락’을 ‘부락해방운동’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설명인즉슨, ‘피차별부락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또 무엇인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부락’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지 않을뿐더러 ‘부락해방운동’같은 말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 말에 뭔가 심상치 않은 뜻이 숨어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부라쿠민(部落民, ぶらくみん, burakumin)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낱말의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말에는 일본의 역사학자 나루사와 에이쥬(成澤榮壽)의 ≪부락의 역사와 해방운동, 部落の歴史と解放運動, 1986≫ 등 수백 권의 연구서들이 입증하듯 골치 아프고 복잡한 문제가 걸려 있다.

 

   
▲ 여전히 마을 어귀에는 부락이라고 쓴 곳이 많다

츠쿠바대학의 하가 노보루(芳賀登)교수는 ‘부락이란 미해방부락을 의미하며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던 근세로부터의 천민신분으로 주로 예다(穢多, 천업에 종사하는 사람), 비인(非人, 죄인, 악귀 따위)들의 집단주거지를 일컫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부라쿠민(部落民)이란 전근대 일본의 신분제도 아래에서 최하층에 있었던 천민집단으로 현재 일본사회에서 ‘부락’이란 말은 ‘터부’로 여기고 있을 만큼 ‘요주의 단어’다. 이곳에 사는 부락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노예나 다름없는 부류로 인민이나 국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히닌’이었을까? 히닌(非人,ひにん、hinin)이란,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는 뜻이라고 일본국어사전은 말한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집단이라니 무섭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이렇게 일본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쓰지 않는 말을 조선마을 이름에 갖다 붙여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예부터 쓰던 ‘마을’ 또는 ‘고을’ 같은 아름다운 말이 있다. 일본의 산 이름과 마을이름에 대해 연구한 다니 유우지(谷有二)씨는《일본산악전승의 수수께끼》에서 ‘일본의 무라(村, 마을)는 조선어 마을(maul)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 이전 단계는 마루(maru)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곧, 마루-마우루(마을)-무라 라는 것이다. ‘~마루(마을)’라고 표기된 일본의 지명은 후쿠오카(福岡) 23%, 큐슈 37%, 관동지방 14% 이상이 ‘~마루(마을)’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일본의 땅이름에 우리말 ‘마을’과 ‘고을’을 내주고 천민집단을 뜻하는 ‘부락’을 들여다 쓰고 있으니 우리들이 정신이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썼습니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