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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시골초등학교의 찐한 ‘토박이말 사랑’

진주 금곡초등학교의 토박이말 어휘력 기르기 현장을 가다

[그린경제=윤지영 기자]  갈라쇼, 레시피, 마일리지, 벤치마킹, 터프가이, 러브샷, 치어리더, 트라우마, 팔로우, 하이파이브, 핫이슈, 슬로푸드, 언론플레이 ,헐리우드액션, 웰빙, 힐링... 

자고나면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어가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다. 물론 이러한 영어권 말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땡깡, 쓰나미, 대합실, 추월, 대절버스, 달인, 택배, 물류 등 치욕의 역사를 겪었던 일제강점기 말도 꾸준히 들여다 예사로 쓰고 있다.  

   
▲ "토박이말 배움터"라고 쓴  금곡초등학교 소식지를 보면 이 학교가 토박이말 사랑에 흠뻑 빠져있음을 느낀다.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와요, 축일(祝日), 제일(第一), 데이, 시즌,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끝없이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 힘있고 빛나고 뚜렷한 가갸날 (중략) 검이여 우리는 서슴지 않고 소리쳐 가갸날을 사랑하겠습니다, 검이여 가갸날로 검의 가장 놓은 날을 삼아주세요, 온 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여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 ” -동아일보 (1926.12.7)- 

위는 만해 한용운 시인이 쓴 가갸날이다. 그가 우리 말 속에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인다는 철학으로 서슬 퍼런 일제와 당당히 맞섰던 것을 우리는 잘 모른다. 말에서 힘이 나오고 말에서 겨레의 얼과 혼이 나온다는 것을 일찍이 만해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 토박이말을 아끼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널리 가르쳐야 한다는 믿음과 철학을 실천하는 화제의 초등학교가 있다. 그것도 대도시의 내로라하는 곳을 제치고 경남 진주의 작은 금곡초등학교(교장 안순화)에서 우리말 사랑을 실천한다는 소식에 기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단걸음에 달려갔다. 

   
▲ 진주 금곡초등학교 “토박이말 바탕의 어휘력 기르기 (2013년 초등맞춤식공모형 직무연수)” 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들(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우리말 달력 연구소 염시열 소장, 진주교육대학교 곽재용 교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 / 왼쪽부터)

토박이말 바탕의 어휘력 기르기 (2013년 초등맞춤식공모형 직무연수)”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 강좌는 30여명의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금곡초, 금성초, 관봉초, 내동초, 대곡초, 문산초, 미천초, 반성초, 이반성초, 정촌초에 재직 중인 교사 31명이 참여 중인 이 강좌는 지난 530일부터 매주 1회씩 6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일정이 잡혀있다. 

530일 목요일 첫 강좌는 우리말 우리글의 앞길이란 주제로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의 강의를 시작으로 토박이말 교수법(우리말 달력 연구소 염시열 소장)”, “어휘교육(진주교육대학교 곽재용 교수)”, “생활 속 어휘 교육(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 “토박이 말 교수, 학습자료 (금곡초 이창수 교사)”, “왜 토박이말인가?(전 대구가톨릭대학교 김수업 총장)” 이 각각 토박이말에 대한 열정을 쏟아 내고 있다. 

   
▲ 금곡초등학교 교실 복도에는 토박이말로 쓴 아이들의 시를 걸어 놓고 있다.
“201189일 고시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국어과 교육과정 내용의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어휘 교육의 강조이며 특히 토박이 말성취 기준이 마련된 점이다. 이는 국어교육 현장에서 교사들과 국어교육 학자들이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한 것이다.”라고 이창수 교사(금곡초)는 자료집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말에는 본디 이름씨(명사) 낱말이 모자랐다는 소문이 있는데 쌀에 관련된 것만 들어도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알 것이다. 씻나락, 볍씨, , , 나락, , 북데기, 우케, , 왕겨, 등겨, , , , 누룽지, 숭늉, 고두밥, 흰죽, 미음 따위의 수많은 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자말이 들어와 우리 낱말이 넉넉해졌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납작하게 해줄 예로 강()에 대한 우리토박이말 가람, , 시내, 개천, 실개천, 개울, 도랑 같은 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김수업 전 가톨릭대학교 총장의 지적은 우리가 얼마나 토박이말을 외면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지적이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강좌로는 613일에 진행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의 강의다. 이 소장은 달인, 할인, 합승, 물류, 택배 같은 말이 일본으로부터 꾸준히 유입됐음을 지적하면서 조선인 길들이기에 썼던 서정쇄신, 일본기독교에서 명치정부 때 신사참배, 궁성요배를 골자로 하던 국민의례 같은 말의 유래를 조목조목 짚어줘 참석했던 교사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어냈다 

현장에서 우리 토박이말을 부여잡고 가르치려는 노력은 일부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현재 교육당국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교사를 우대하고 승진에도 반영하지만 토박이말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교사들에 대한 관심은 적다.”고 이창수(금곡교) 교사는 나라의 토박이말 교육무관심 정책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금곡초등학교 6학년 교실 알림판에는 "토박이말 되새김"을 적어놓아 아이들이 늘 새길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창수 교사는 금곡초등학교의 어린이들에게 토박이말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일상에서 자연스런 교육이 되도록 실천하고 있는데 교실 곳곳에는 한자말에서 온 낱말들을 몰아내고 토박이말 낱말로 교실을 꾸미는가 하면 아이들에게 토박이말 시를 가르쳐 복도 곳곳에 예쁜 액자로 만들어 걸어 두는 등 남다른 토박이말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강한기(금곡초) 교감은 때마침 연수로 출장 중인 안순화 교장 대신 기자를 맞이하면서 이번 금곡초등학교의 토박이말 바탕의 어휘력 기르기 교사 직무연수를 진행하는 학교로서 이창수 교사의 토박이말 사랑에 쏟는 열정과 적극성에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진주시 외곽 면소재지에 있는 금곡초등학교는 전교 학생 수 60명의 작은 학교이다. 논밭이 펼쳐지는 정경이 아름다운 소박하고 아담한 금곡초등학교에서 펼쳐지는 토박이말 연구와 실천을 위해 힘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분들의 노력이 하나의 큰 불씨가 되어 외래어로 오염 되가는 우리 토박이말의 부활을 꿈꾸며 교정을 걸어 나왔다.

   
▲ “생활 속 어휘 교육"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는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

   
▲ 토박이말 사랑에 빠진 진주 금곡면 금곡초등학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