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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40여 대의 해금, 천상의 소리를 빚다

해금협회 10돌 기념연주회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현악기 해금은 단 두 줄이다. 6줄에서 12줄까지인 다른 찰현악기에 견주면 줄이 둘뿐이지만 두 줄만 가지고도 해금은 가슴을 에는 애절함과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시원함, 어떤 때는 흐느끼고, 어떤 때는 앙증맞은 음색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 그 해금을 10년 동안이나 부여안고 살아오던 비전공자들이 드디어 10돌 기념연주회를 가졌다 

   
▲ 40여 대의 해금 연주자들, "상주함창"를 연주하는 모습 이도

어제 616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비영리단체 <해금협회(상임대표 안진성) 회원들의 소리가 활짝 피었습니다.” 무대가 열린 것이다. 두 줄로만 연주를 해야 하기에 전공하지 않으면 그 음색을 제대로 연주해내기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을 깨고 그들은 당당히 무대에서 격찬을 받았다. 

무대는 먼저 정악 천년만세로부터 시작한다. 전공자들도 흔히 청중의 기호에 맞춰 크로스오버만을 연주하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비전공자들은 정악으로 그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어려운 정악 연주를 당당히 해낸다. 40여 대의 해금이 품어내는 마의 소리에 청중은 우선 넋이 나간다. 이어서 올린 한범수류 해금산조 한바탕도 무대를 꽉 차게 한다. 이와 함께 해금 명인 김영재 선생 작곡의 민요풍 상주함창이 객석을 흥겹게 한다.  

이후 계속된 크로스오버 곡들은 해금에 자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먼저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등장한 안진성 대표가 자신의 음반 수록곡으로 박경훈이 작곡한 약속을 신들린 듯 연주한다. 아 어디서 저런 선녀가 하강했던 말인가? 모두가 숨죽이며 듣는다. 단 두 줄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며 청중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십 차례. 이제 청중들의 해금 선율 속으로의 몰입은 끊일 줄 모른다 

이렇게 해금에 푹 빠진 순간 이어지는 음악은 영화 여인의 향기삽입곡 “Por una cabeza”이다. 안진성 대표가 구성하여 20여 대의 해금에 가야금,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타악기까지 서양악기와의 협연은 기가 막히다.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청중의 마음을 다잡아 놓으면 그 위를 해금은 날고 또 나른다. 국악기의 음량이 작아서 서양악기와는 어울리지 못할 거라고 누가 잘못된 이야기를 했나? 그야말로 환상적인 어울림을 뽐낸다. 

   
▲ 해금협회 안진성 상임대표가 "약속"을 연주한다.이도

이어서 연주되는 박진우 작곡 안진성 구성의 얼음연못”, 박경훈 작곡으로 위촉 초연인 행복한 여행도 잠시도 쉴 틈을 주지 못하게 한다. 해금을 비롯한 각 악기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이루어지는 화음은 청중을 꼼짝 못하게 한다. 그리고 연주되는 드라마 짝패에 삽입되었던 비연에 이젠 기자의 마음까지 흐느낀다. “제발 우리에게 이런 비연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는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해볼까? 

마지막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 2왈츠가 연주된다. 원래 재즈란 미국에서 탄생하여 전 세계 음악으로 발전한 것인데 이 재즈모음곡엔 정통재즈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인가? 사실 이곡은 러시아 우수가 담긴 서정적 선율을 왈츠라는 흥겨운 춤곡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감춰진 애잔한 슬픔이 더욱 부각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 곡을 들으며 나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그리고 영화 주제곡 “somewhere my love”가 중첩되어 떠오른다. 그 상상의 심연에 해금과 함께 해금을 받쳐주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음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나는 연주가 끝나자 저절로 일어섰다. 기자 신분이라 좀체 공연에 빠져들지 못했던 내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게 바로 기립박수란 것이던가? “잘 한다는 외마디가 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온다. 여기저기 내 생각에 동의하는 앵콜”, “한 번 더절규가 쏟아진다. 결국 연주자들은 다시 무대로 불려나와 행복한 여행을 연주했다 

   
▲ 서양악기들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연주를 해내는 해금 이도

   
▲ 기가 막힌 크로스오버 연주로 해금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습 이도

안진성 상임대표는 공연 뒤 그 소감을 말한다. “10년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저 예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모든 회원이 하나가 되어 어려움을 극복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회원들께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청중들께 저는 가슴 속 저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의 악기 해금을 알려내고 또 그 아름다움을 모든 분 특히 장애자 여러분과 함께 누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날 한 시간 넘게 달려 멀리 남양주에서 식구와 함께 공연을 보러온 마완근 마석고등하교 교사는 공연을 보고나서 감격에 겨워했다. “해금이 원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40여 대 해금이 함께 하는 연주를 보니 정말 귀한 자리에 동참하게 됐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쁩니다. 이제 학교 현장에서도 국악, 특히 해금을 알리는 일에 앞장 설 것입니다.” 

또 종로구에서 달려온 주부 윤수애(62) 씨는 해금이 서양악기 특히 콘트라베이스나 첼로와 잘 어울릴 거라고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오늘 연주를 보니 저런 기막힌 찰떡궁합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공자도 아닌 아마추어들이 저렇게 청중을 매료시키는 연주를 하다니 이들을 지도한 안진성 대표님이나 회원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손뼉을 쳐드립니다. 저는 오늘 참 행복한 한여름밤 꿈을 꾸었습니다.” 

이날 연주에 굳이 옥에 티를 잡자면 사회자가 한복을 입고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점과 매끄러운 해설이 따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흠이 이날 객석을 가득 매운 청중과 청중의 큰 손뼉이 주는 의미를 결코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좋은 연주는 이리도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나 보다. 한여름밤의 행복한 꿈을 꾸지 않을 청중이 있었을까? 정말 드물게 기자의 신분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한 이날의 해금 연주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