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전통 가곡을 담은 국악 음반이 국내 음반 사상 최초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국악 전문 음반사 ‘악당이반’ 김영일 대표(51)는 5일 음반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이 내년 봄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에서 ‘서라운드 사운드’와 ‘월드뮤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통보를 그래미상사무국 쪽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클래식, 가요, 전통음악을 통틀어 국내에서 녹음된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를 노래하는 조희선 가객
지난 2011년 9월 6일 언론에는 한국 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고 떠들썩했다. 전통가곡은 조선 시대 문인의 시조를 관현악 반주에 실어 노래로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 음악의 고유 형식 중 하나로, 이미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그 전통가곡을 안방에서 듣는 기분은 어떨까? 지난 7월 12일 저녁 7시 (사)월하문화재단이 주최한 “가곡과 함께 하는 월하예당선비문화체험관광” 공연은 그야말로 안방 같은 편안한 공간, 가객과 연주자를 지척에 두고 감상하는 기막힌 행사였다.
가곡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어쩌면 가곡 공연이라면 지레 겁을 낼지도 모른다. 우선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사설에 언뜻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그런 우려를 일거에 날려 보내는 쾌거였다.
▲ 해금독주곡 적념"을 연주하는 고윤진 씨
▲ 선비가 되어 꿈을 꾸는 청중들
우선 공연장은 전통가곡의 명인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였다가 지난 1996년에 작고한 김월하 선생이 사시던 집을 개조하여 작은 공연장으로 꾸민 곳이다. 완전하게 한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우선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날 사회와 해설은 (사)월하문화재단 예찬건 사무국장이 맡아 구수한 입담으로 가곡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것이 공연 성공의 첫걸음이었다. 맨 처음은 김현성 씨의 “상령산 풀이” 피리 독주곡이 장내를 감싸 안았다. 작지만 세상을 울리는 피리 소리는 우선 청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조의선 씨가 청아한 목소리로 평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불렀고, 고윤진 씨가 해금독주곡 “적념”을 연주해 단 두 줄만으로 청중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을 선보였다.
계속해서 이건형 씨가 남창가곡 반우반계 편락 “나무도...”를 부른다. 기객은 나무도 바위도 없는 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와 바람 불고 물결 거친 바다 한 가운데서 노도 잃고 닻도 끊어진 배에 있는 외롭고 고독한 처지를 적절히 표현해 낸다.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그러면서도 절제를 할 줄 아는 소리는 차세대 명창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었다.
▲ 세악합주 "천년만세"를 연주하는 예당학회 회원들
▲ 고가신조 "청산도 절로절로"를 부르는 김지선, 조의선 씨
그밖에 강혜진 씨의 화려한 거문고 독주도 가슴에 닿았고, 예당학회의 세악합주 “천년만세”도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다만, 여창가곡 편수대엽 “모란은...”은 가곡의 아름다움을 잘 소화했지만 약간 모자란 듯한 소리여서 조금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공연의 압권은 마지막에 있었다. 우리 음악은 청중과 함께 해야만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연주자와 가객 그리고 예찬건 사무국장은 물론 청중 모두가 아리랑을 흥겹게 불러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익히 아는 본조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이렇게 새롭게 다가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공연은 나이 지긋한 명창들이 부르는 것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약간 빠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연주자와 가객이 모두 젊은 피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덕분에 공연은 내내 활기를 띄었고,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이루려는 그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한여름 밤, 청중은 가곡과 함께 선비가 되어 마음을 닦고 또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