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사대부 화원 강세황은 올해 태어난 지 300해가 된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능참봉(왕릉을 지키는 벼슬)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누가 뒤를 봐준 것이 아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위대한 강세황전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8월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강세황은 시(詩)와 글씨(書), 그림(畵)에 모두 능통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그에게 평을 받지 못하면 부끄럽다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비평가였다.
그 강세황전을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전시회는 모두 6부로 나누어 강세황의 모든 것을 살핀다. 제1부는 “문인화가의 초상”이다. 보물 제590-1호 강세황초상을 비롯하여 강세황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여 정조의 명으로 이명기(李命基, 1757~?)가 그린 초상, 궁중화원 한종유韓宗裕(1737~?)가 그려준 초상 등 강세황 초상을 한 자리에 모아 살펴본다.
▲ 강세황 <자화상>, 1782년, 비단에 색, 보물 제59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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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종유(韓宗裕), <강세황 초상> 1781년, 종이에 엷은 색 |
초상화가 크게 유행하던 조선시대에도 자화상은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자화상을 여러 점 그리고, 스스로 “찬(讚)”까지 곁들인, 강세황의 자화상(보물 590-1호)는 그의 강한 자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또 한종유가 부채에 그려준 강세황 61살 때의 초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작품이다. 야외에서 한가롭게 앉아있는 자유로운 모습을 그린 점에서도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흔치 않은 예인데, 강세황이 손자 강이대(姜彝大, 1761~1834)에게 준 것이라 스스로 적은 글을 통해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각별한 사연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가문과 시대’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일생을 담고 있는 각종 자료들을 소개한다. 현재 진주 강씨 문중에 전하는 강백년(姜柏年, 1603~1681), 강현(姜鋧, 1650~1733), 강세황 관련 자료들, 특히 관직 임명 교지(敎旨), 각종 필묵들 같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의 한평생 삶을 재구성해 본다.
또한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강세황까지 삼대가 연속으로 기로소에 들어가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라 불린 가문의 위상을 김정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씨를 통해 살핀다. 이러한 가문의 배경 속에서 강세황의 예술가적 재능은 아들, 손자에게까지 이어져 강이오(姜彛五, 1788~?), 강이천(姜彛天, ?~1801), 강진(姜晉, 1807∼1858) 대대로 화업을 이었던 사실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 추사 김정희,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 1781년, 종이에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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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황,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 1747년, 종이에 먹 |
제3부는 “문인의 이상과 꿈”이다. 강세황은 안산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많은 문인, 화가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안산 지역에서 열리는 시회에 참석하여 훗날 “안산15학사”라 불리는 문인들과 시를 나누고 폭넓게 사귀하면서 그의 문학적 내공을 키워갔다. 그러한 친구관계는 <지상편도(池上篇圖)>(개인 소장),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개인 소장) 등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어서 제4부에서는 ‘여행과 사생’이라는 주제로, 실경을 그린 강세황 그림들을 살펴본다. 송도(지금의 개성), 전라북도 부안, 금강산 일대 그림, 건륭제 천수연(千叟宴)에 가는 길에 만난 중국 풍경을 그린 등을 선보인다.
강세황은 “진경산수가 그곳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시보다는 기행문이, 기행문보다는 그림이 낫다고 믿었다. 또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금강산을 현장의 구별 없이 일률적인 기법으로 그려냈음을 비판했는데, 이는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그림의 대상을 꾸밈없이 그대로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5부를 보면 “다양한 화목, 청신한 감각”이라는 주제로, 봉숭아, 해당화 등 참신한 소재의 선택, 산뜻한 노란 색, 푸른 색 등의 감각적인 붓놀림을 보여주는데 강세황의 문인 필치와 감각적인 채색이 어우러져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는 매난국죽을 한 벌로 그려 사군자의 의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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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황, <무>, ≪ 豹菴帖 ≫, 18세기, 비단에 엷은 색,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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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황, <난죽도권(蘭竹圖卷)>, 1790년,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
마지막 제6부에서는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비평이 담겨있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여 그의 위대한 감식안을 보여준다.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등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에 강세황은 친필로 화평을 남겼다. 강세황이 남긴 화평은 오늘날 조선시대 회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전시는 18세기 대표적인 문인화가 강세황의 대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것은 물론 강세황이 역동적인 삶 속에서 평생 이어간 서화세계를 통해, 정조가 삼절(三絶)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그 예술의 정를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ㅇ전시 설명
평 일 : 오전 10시 30분, 11시 30분/ 오후 2시 30분, 3시 30분
토요일 : 오전 11시 30분/ 오후 1시 30분, 2시 30분
일요일 : 오전 11시 30분/ 오후 1시 30분, 2시 30분, 3시 30분
ㅇ큐레이터와의 대화
전시기간 중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혹은 7시 30분/ 특별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