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정석현 기자] 이 비는 조선(朝鮮) 제16대 인조(仁祖)가 즉위하기 전에 머물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1695년에 건립했으며, 숙종(肅宗)이 직접 비문을 지었다.
광해군 15년(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仁祖反正) 거사일(擧事日, 3월 12일)에 장단부사(長湍府使) 이서(李曙), 이천(伊川)의 이중로(李重老)의 군(軍)이 이곳에서 합류하고 홍제원(弘濟院)에서 김유(金瑬)의 군과 합세, 창의문(彰義門)을 통해 입성(入城), 능양군 (綾陽君)의 친솔(親率)하에 거사를 성공했으며, 능양군(綾陽君)이 즉위하니 그가 인조(仁祖)이다.
일설에 이곳에서 합세할 때에 이서(李曙)의 군(軍)이 늦게 도착하였다 하여 연서 (延曙)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 인조별서유기비(仁祖別墅遺基碑)
연대: 1695년(숙종21년)
문화재 지정: 보물 - 제 1462호
크기: 높이 168cm, 너비 72cm, 두께 25cm
출토지,소재지: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촌동 8-12번지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