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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조선 그림 그리고 화가 이야기

[서울문화 이야기 20] 김홍도, 신윤복, 정선 그림 속의 비밀들 3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1) 신윤복이 스스로 감격에 겨워 한 그림, ‘미인도 

   
▲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申潤福:1758 ~?)의 <미인도>,114.2×45.7㎝, 간송미술관 소장, 왼쪽 / 공재 윤두서의 손자 윤용의 <미인도>, 해남 녹우당 소장

이 조그만 가슴에 서리고 서려 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을 붓끝으로 어떻게 그 마음마저 고스란히 옮겨 놓았느뇨?” 

우리가 익히 아는 미인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이 그렸는데 화가는 그림을 그려놓고 스스로 감격에 겨워 그림에 이런 글을 적어 놓았다.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생활사박물관 10에 보면 다리(가체)를 구름처럼 얹은머리에 동그랗고 자그마한 얼굴, 둥근 아래 턱, 다소곳이 솟은 콧날과 좁고 긴 코, 귀밑으로 하늘거리는 잔털이라는 표현으로 이 여인은 우리 전통미인의 전형이자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 미인도는 비단천 먹 채색으로 그린 것이며, 사실적 기법으로 정통초상기법을 따라 머리털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또 윤곽선(쌍선)을 그린 후 그 안에 채색하는 구륵법의 그림이라고 한다. 화폭은 113.9cm x 45.6cm로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에 소장되었다. 다만 여기 미인은 현대인의 미인상과는 많이 다르다.
 

2) 김홍도의씨름도’, 씨름꾼은 어디로 자빠질까? 

   
▲ 김홍도 (金弘道)의 <씨름도>, 39.7 x 26.7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 사람 중 오른편 사람은 어금니는 앙 다물고 입을 꽉 깨물었으며,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다리를 떠억 버티고 선 모양새가 이번엔 분명히 이기겠다는 각오가 대단해 보인다. 반면에 왼편에 번쩍 들린 사람의 표정을 보면 눈이 똥그래지고, 양미간 사이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으며, 쩔쩔매는 눈빛이 너무나 처절하다. 더구나 한쪽 다리는 번쩍 들려있고 나머지 다리도 금새 들려질 것 같은 모양새로 이 사람이 분명히 질 것이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 왼쪽 사람들은 느긋하게 구결을 하고 있는데 반해 오른쪽 아래 구경꾼들은 몸을 뒤로 젖히고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이쪽으로 넘어질 것이란 짐작을 해볼 수 있다.  

여기서 잘못 그려진 부분이 한 군데 있다. 뒤로 몸을 젖힌 구경꾼의 손을 반대로 그려놓았다. 참 어색하다. 천하의 단원이 이런 실수를? 아니면 재미있으라고 의도적으로?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단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3) 신윤복 그림, 두 사람만이 아는 월하정인 이야기 

   
▲ 신윤복의 <월하정인>, 28.3 x 35.2 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3대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金得臣) 가운데 신윤복의 풍속화는 남녀의 선정적인 장면, 곧 양반·한량의 외도에 가까운 풍류와 남녀 사이의 애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신윤복 풍속화 중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었다. 또 여기엔 <연당야유(蓮塘野遊)>, <단오풍정(端午風情)>, <월하정인(月下情人)>, <기방무사(妓房無事)>, <청루소일(靑樓消日)> 등 모두 30점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란 그림은 늦은 밤 담 모퉁이에서 만난 한 쌍의 남녀를 그렸다. 넓은 갓에 벼슬하지 못한 선비가 입던 겉옷인 중치막을 입은 사내와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와 몸 윗부분을 가리어 쓰던 쓰개치마를 쓴 여인이 초승달 아래서 밀회를 즐기는 그림이다.  

그림 중 담벼락 한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정인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밤중 삼경(11~1)에 과연 남녀가 밀회를 즐길 수 있을까? 이 여인네는 아마 기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그림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 초승달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를 월식으로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모습이라고 말한다  
 

4) 선비정신이 그대로 드러난 추사의 세한도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보 180호, 수묵화, 23×69.2 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국보 180'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그가 59살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에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수묵과 마른 붓질, 그리고 글자 획의 감각만으로 그려졌으며, 옆으로 긴 화면에는 집 한 채와 주위에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간략하게 그렸을 뿐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겼다. 특히 빳빳한 털로 만든 붓인 갈필(渴筆)로 형태의 대강만을 간추린 듯 그려 한 치의 더함도 덜 함도 용서치 않는 강직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처럼 극도로 생략 절제된 그림은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는 직업화가들의 자연스럽지 못하고 겉치레에 치중한 기교주의에 반발,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수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그림에는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는 발문(跋文, 책이나 그림의 끝에 그림의 뜻이나 그린 뜻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 보인다. 사제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멀리 중국에서 구해온 귀한 책들을 들고 그를 찾아온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그렇다. 어려움에 당해봐야 진짜 따뜻한 마음이 제대로 드러날 것이다.
 

5) 손가락이나 손톱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 지두화 

   
▲ 최북의 지두화(指頭畵)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42.9 x 66.3 cm, 개인 소장

영화 취화선가운데 오원 장승업이 술에 취해 손가락으로 원숭이를 그리고, 다음날 깨어 자신의 지두화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지두화를 잘 그린 화가가 또 있다. 그림을 그리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가 된 조선 영조 때의 화가 최북이 바로 그이다.  

그는 의미 있는 그림을 선물했을 때 반응이 변변치 않으면 두말없이 그림을 찢었으며, 의미 없는 그림에도 반색을 보이면 도리어 뺨을 치고,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북은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부정으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 대신 그의 삶은 늘 고독했다. 

이런 최북의 삶은 풍설야귀인(風雪夜歸無人)’에 잘 나타난다. 눈보라 치는 겨울 밤, 귀가하는 나그네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헤치고 의연히 걸어간다. 그림 속 나그네는 어쩌면 거침없는 성격과 고달픈 인생의 최북 자신인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붓 대신에 손가락이나 손톱에 먹물을 묻혀서 그린 그림인 지두화(指頭畵). 이 그림을 그린 그의 손놀림에 불같은 삶이 더해진 것은 아닐까?  

결국 술을 좋아했던 그는 술에 취한 채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고 한다.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가 마지막 택한 죽음은 그것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