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 141에서는 소리극을 만드는 단체나 개인들은 제작비 마련에 고민이 깊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판소리에 견주면 극적인 요소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나 가곡이나 경서도 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을 제작, 공연하는 것이 곧 이 분야 소리의 확산운동이라는 점에 공감대가 맞추어져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 분야의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가능하고 결정적으로는 제작에 필요한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소리극의 무대화는 공염불이라는 이야기, 그렇다고 국가나 지방정부, 혹은 뜻있는 제작자가 나타나기를 무한정 기다릴 수 만도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우리 속담에 “목마른 자가 먼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경서도 소리극의 무대화 작업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를 후원해 줄 제작자는 나타나 주지 않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결국 목마른 명창들이나 단체들이 자비를 들여 우물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경서도 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소리극을 제작하여 경기소리나 서도소리가 처해져 있는 오늘의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려는 명창들의 몸부림을 보면 전통음악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몰이해가 안타깝기만 하다.
부디 국가나 지방정부, 혹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후원이 각 단체나 보존회에 답지하여 그들이 신명나는 소리판을 만들어 나가도록 기를 살려주었으면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사실은 경기소리나 서도소리의 전승이나 확산을 목마르게 염원하는 사명감을 지닌 명창들이나 단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어떤 명창은 지방 정부를 설득하기도 하고, 또는 기업의 협찬을 받아내기도 하지만, 거의 단발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은 회원들의 주머니와 자비를 들여 우물을 파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의 노력이 경서도 소리의 전공자들이나 애호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무모한 도전을 서슴지 않는 몇몇 경서도 명창 중, 먼저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인 임정란의 활동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소리의 임정란 명창은 1930년대 <대동가극단>이란 단체를 이끌던 임종원의 집안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소리극단의 필요성을 일찍이 주장하고 나섰으며 여러 차례 경기 소리극을 무대에 올려 소리극의 가능성을 제기해 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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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진 "대동가극단의 맥을 잇다" 한 장면(경기소리전수관 제공) |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지역의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소리극 ‘낙시대장 서얼’(2003)을 비롯하여 과천지방의 민담을 주제로 한 소리극 ‘과천골 딸 부자집 경사났네’를 2005년에 올렸다. 2007년에는 이것을 다시 마당놀이 형태로 변화시킨 ‘과천현감 민치록’그 후 2009년에는 이를 다시 재구성해서 ‘애민의 방정식’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의 꾸준한 경기소리극 공연은 2012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진 ‘대동가극단의 맥을 잇다’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각색이 되어 다시 2013년에도 과천시민회관에 올려졌고 시민들의 열띤 갈채를 받았다. 소리극 공연뿐이 아니다. 그는 학술관련 행사도 쉬지 않고 추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지난 2012년, 경기도 과천에 소재한 《경기소리전수관》에서 있었던 동 전수관의 운영방법이나 방향에 관한 학술세미를 개최하여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고, 2013년 12월 2일에도 <대동가극단의 예술사적 재조명과 경기창극단의 방향> 이란 주제로 두 번째 학술세미나를 주최하여 학계, 국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제2회 학술회의는 권오성의 ‘대동가극단의 전통과 경기창극단 설립에 대한 당위성’이라는 기조강연에 이어 제1주제는 이보형의 ‘과천지역의 전통공연문화와 경기소리 창극’, 제2주제는 유영대의 ‘경기창극단의 설립과 운영에 대하여’, 제3주제는 김기형의 ‘경기소리극의 공연현황과 방향성 모색’ 등의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필자의 진행으로 김인숙(서울대), 황순주(경기문화재단), 김문성(국악평론)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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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가극단과 경기창극단 관련 학술회의 장면(경기소리전수관 제공) |
참고로 <대동가극단>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웃음을 잃은 우리 민족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던 때에 임종원를 위시하여 강남중, 신영채, 홍갑수, 이화중선, 박초홍 등이 창립한 단체이다. 이들은 소리를 중심으로 극도 꾸미고, 병창도 부르며, 춤도 추고, 줄타기도 하는 등 들려주고 보여 줄 거리들을 재미있게 만들어 전국을 유랑하던 창극단체였다.
창립 이후에는 임방울, 정광수, 박귀희, 신영채, 박초월 등 유명 소리꾼들과 무용의 김산호주, 줄타기의 김영철, 곡예의 김하경 등이 활동했고 한다. 그 외에도 과천 출신의 임씨 집안의 재주꾼들이 다수 참여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소리극 공연이나 학술대회를 통해서 임정란 명창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경기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단 역시, 충분히 일반 대중들을 감동시키고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소리극단을 창단하는데 있어 국가나 지방정부의 긍정적 검토를 촉구하는 것이다. 부디 그의 주장에 관계당국이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랄 뿐이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