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30 (수)

  • 맑음동두천 23.2℃
  • 맑음강릉 26.0℃
  • 맑음서울 21.7℃
  • 맑음대전 23.5℃
  • 맑음대구 21.6℃
  • 맑음울산 23.3℃
  • 맑음광주 21.5℃
  • 맑음부산 20.0℃
  • 맑음고창 21.6℃
  • 구름많음제주 18.8℃
  • 맑음강화 19.7℃
  • 맑음보은 21.5℃
  • 맑음금산 23.8℃
  • 맑음강진군 20.6℃
  • 맑음경주시 24.4℃
  • 맑음거제 20.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항일독립운동

김구의 한인애국단 핵심 윤봉길 · 이봉창과 “이화림”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김구의 한인애국단 핵심 윤봉길 · 이봉창과 “이화림”
                                                                                                                
                                                                                      이  윤  옥
                                                                                       
                                                             
화려한 불빛 속 상하이의 밤
서러운 이방인 삼삼오오 모여 이룬 숲
서둘러 국권회복의 길 암중모색이었네
 
일본 사쿠라다몽으로 떠나는
이봉창 가슴에 안겨 준 폭탄
불발로 품은 뜻 이루지 못했어도
혼비백산한 히로히토 화들짝 놀라
그날 밤 이불에 오줌 지렸을 게다
 
석 달 뒤 상하이홍구 공원
물샐틈없는 수비 뚫고
단번에 날린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도
여장부 이화림이 도운 거사였어라
 
태항산 거친 삼림 속 마다치 않고
조선의용대 끌어안고 부르던 노래
아리랑 피 끓는 함성 속에
절절이 묻어나던 조국해방의 염원
 
돌미나리 민들레 수양버들 잎사귀로
배 채우며 쟁취한 광복
고국은 그 이름 잊었어도
그 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남으리.
 
 
   
▲ 이화림 애국지사가 나온 중산대학은 수많은 독립투사가 다녔다.
 
이화림 (李華林, 1905.1.6 - 미상)
 
“한인 애국단의 핵심 멤버 3인으로는 이봉창, 윤봉길, 이화림이며 이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에서 출생하여 3·1운동 참가 후 평양 일대의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다가 1930년 상해로 건너가 사격, 무술을 배웠고 일본군 밀사들을 유인 살해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 이봉창 이 동경에서 던진 수류탄은 이화림이 상해에서 만들어 다리 사이에 채워준 주머니에 담아 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당시에도 김구의 지시로 윤 의사와 위장 결혼, 함께 현장에 접근하여서 했다는 것이다. 거사 당일 두 사람이 김구 앞에서 선서를 하기까지 했으나 현장으로 떠나기 직전 김구가 “두 사람을 모두 잃을 수는 없다.”고 만류하는 바람에 윤 의사만 혼자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거 이후 이화림은 중산대학에서 법학을 두 학기 공부하였고 다시 의학부로 전과하여 간호사 생활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공산당계열의 태항산 무장항일세력에 참가, 김학철 등과 같은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1940년에 낙양(落陽) 부녀대장, 1941년에 태항산 부녀대대장, 1944년 연안의대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하얼빈시에서 의사 생활을 하였다. 중공정권 수립 후에는 북경 교통부의 위생부 간부 등을 지내고 1979년 공직생활을 마친 후 요령성 대련시 정부 시찰원 (고문직)직책을 갖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헌 윤봉길 평전> 김학준 저 p368 -
 
해방 2년 전 이화림은 조선의용군 병원에서 일하다가 1945년 1월 혁명사업의 하나로 의학 공부도 해야한다는 결심을 하고 중국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사의 길을 걷는다. 해방 후에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하얼빈에서 의사로, 북경에서 교통부, 위생부 간부를 하다 은퇴하였다.
 
이화림 같은 항일 전사들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조선의용대와 독립동맹 출신들이 남한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목숨 바쳐 쟁취한 조국은 아쉽게도 남북으로 갈려 있지만 과거 한목소리로 항일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발굴하여 그 정신을 다시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이화림 애국지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