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경서도 소리가 처해져 있는 오늘의 상황은 매우 불안하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혹 전국대회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고 명창의 반열에 올라도, 이들 경서도 소리꾼들이 활동할 무대가 없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 소리꾼들은 이러한 상황을 소리극을 만들어 스스로 탈피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 정부의 배려 없이, 또는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체의 도움 없이, 보존회원들이나 제자들과 함께 소리극을 제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 전통음악문화에 대한 우리사회의 몰이해가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경서도 소리가 버티어 나갈 수 있는 힘은 이러한 <무모한 도전> 을 서슴지 않는 명창들이 존재하고 있고, 또한 이들을 뒤에서 따라주고 격려해 주는 애호가들이 있어서 절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중 경기소리의 예능보유재로 활동하고 있는 임정란 명창이 있다.
![]() |
||
▲ 경서도 소리극 <대동가극단> 공연 한 장면 |
그녀는 1930년대 《대동가극단》이란 단체를 이끌던 임종원의 집안으로 여러 차례 경기 소리극을 무대에 올려 소리극의 가능성을 제기해 온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낙시대장 서얼’이나 ‘과천골 딸 부자집 경사났네’, 그리고 ‘과천현감 민치록’, ‘애민의 방정식’, ‘대동가극단의 맥을 잇다’ 등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서도 소리의 전수나 방향에 관한 학술회의도 주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주도해 오는 선두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임정란은 과천의 “찬우물”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임씨 집안의 자손이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해 있을 1935년 무렵, 경기도 과천에 살던 임종원은 동료 국악인들을 규합하여《대동가극단》을 창단하게 된다. 여기에 소속되었던 임상문은 당시 줄타기의 명인으로 임정란의 당숙이고, 임종선은 가야금, 임세근은 태평소와 피리, 임정란의 고모인 임명옥과 임명월 자매는 줄타기와 재담, 경서도소리, 남도소리, 무용에 뛰어난 재주꾼들이었다. 그러므로 집안의 내력이나 배경으로 볼 때, 임정란이 경기소리꾼으로 성공하게 된 배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임정란은 일찍이 벽파 이창배가 설립한 <청구고전성악학원>에 입문하여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시조창이나 가사창을 배운 뒤, 경기의 12좌창, 선소리산타령, 휘몰이잡가, 경서도민요 등 경기지방이나 서도지방 소리의 기초를 충실히 닦았다. 그 뒤,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였던 묵계월 문하에 들어가 전수장학생-이수자-전수조교-보유자후보에 오르면서 나름대로의 개성 있는 소리세계를 구축해 온 명창이다.
![]() |
||
▲ 대동소리극 학술회의 발표자들 |
그러던 그가 돌연히 국가문화재 보유자후보를 사퇴하고 고향땅 과천으로 돌아와 경기지방의 명창으로 활동하면서 지방 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현재 그녀는 과천 소재의 경기소리 전수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가장 최후의 큰 꿈은 경기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단의 창단이 아닐까 할 정도로 소리극에 관한 열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 작업은 필시 과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대동가극단》시절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염원도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천은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땅이지만, 서울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사당동에서 남태령이란 낮은 고개만 넘으면 될 정도로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이다.
잠시 남태령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옛날 남태령 고개는 호현(狐峴), 즉 여우고개로 불렀다. 정조임금이 부친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수원의 융능에 참배를 자주 다녔는데, 어느 날 이 고개에서 쉬던 중 시종들에게 고개 이름을 물었다.
이때 과천현의 이방은 즉석에서 남태령이라고 대답했다. 이 고개의 이름이 여우고개로 알고 있던 정조임금이 왜 거짓말을 하는가? 꾸짖었더니 "본래 여우고개라 부르고 있지만, 임금께 요망스러운 이름을 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도성에서 남쪽 방향의 남(南)과 크다는 태(泰), 고개의 영(嶺)이라는 뜻으로 남태령(南泰嶺)이라 하였나이다.” 하니 정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때부터 이 여우고개를 남태령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서울 사당동에서 남태령을 넘으면 과천이 나오고, 과천에 소재한《경기소리 전수관》에서는 임정란 명창과 그의 제자 이윤경, 임춘희 외에《한국경기소리보존회》회원들이 오늘도 경서도 소리에 목청을 높이고 있다. 소리뿐 아니라, 공연이나 음반 취입을 위한 연습도 쉬지 않는다. 또한 학술세미나도 개최하여 관련 실기인들은 물론, 국악학이나 국문학, 역사학, 예술, 문화재 등 각 관련 학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다.
임정란 명창의 메시지는 확실하고 분명하다. 경기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단 창단되어야 하고, 이는 국가나 지방정부(서울, 경기, 인천)등 경기민요의 발생지에서 앞장서야 하며, 기업의 후원이 문화와 예술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오늘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