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앞에서는 경기소리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정란 명창과 《대동가극단》이야기를 하였다. 임정란은 과천에서 대동가극단을 이끌던 임종원의 집안으로 경기 소리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이야기, 그래서 <낙시대장 서얼>을 비롯하여 여러 편의 소리극을 꾸준히 공연해 왔고, 경서도 소리의 전수나 방향에 관한 학술대회도 주최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는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경서도 소리를 배운 뒤, 묵계월 문하에 들어 문화재 예능보유자후보가 되었으나, 이를 사퇴하고 고향땅 과천에서 현재는 경기도 문화재의 예능보유자가 되었고, 경기소리 전수관을 운영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동가극단>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 그 전통으로 경기소리극단의 창단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빼놓지 않았다.
경서도 소리의 전문가들은 임정란 명창뿐 아니라, 그 누구도 소리극단의 창단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래서 소리극 운동을 열심히 펼쳐 온 것이다. 그 대표적인 명창에 이춘희, 김혜란, 백영춘, 최영숙, 최근순, 유창, 김경배, 유지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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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 정가극 <영원한 사랑> |
이들은 소리극에 참여할 수 있는 소리꾼들은 물론,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상태이고 작가나 연출자, 연주자나 무용수, 기타 무대의 전문인들도 참여가 가능하기에 소리극단이 당장 창단된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창단의 문제는 인적 자원이 아니라 바로 재원의 확보 능력이나 조달이 문제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소리극단의 창단은 수익성이 없는 보존단체나 개인으로는 불가하다. 국가나 지방정부(서울, 경기, 인천) 등의 배려나 기업의 후원으로 창단되어야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수익사업체가 아닌 문화재 보존단체나 연구단체, 또는 개개인의 명창들이 국가나 지방정부의 특별배려가 없는 상황에서는 소리극을 제작하는 자체도 어렵거니와 더더욱 소리극단의 창단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는 일이어서 난감하기만 한 것이다.
창단이 어렵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소리극 운동을 포기해서는 이 또한 경서도 소리의 확산을 기대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우선은 국립국악원이라든가 경기도립국악단과 같은 국공립기관들이 앞장서 주어야 한다. 그것이 정가극의 형태이든, 경기소리극이나 서도소리극이든 간에 중부지역의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소리극운동을 펼쳐나가야 하고, 나아가 소리극단의 창단을 위한 사전 분위기나 필요성을 조성해 나가는데 앞장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립국악원이 그동안 소리극을 기획하고 제작하여 무대에 올렸다고 하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시도였고, 또한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국악인들에게는 매우 의의있는 작업으로 평가될 것이다.
참고로 국립국악원이 제작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1998년 10월에 공연되었던 창작 소리극 <남촌별곡>을 시작으로 소설을 소리극화 한 <시집가는 날>, 제주민요의 <이어도사나>, 그리고 2004년 정가극으로 새로운 장르를 기획한 <선가자 황진이>, 2009년 국립국악원 대표브랜드로 소리극화 한 <소리극 황진이>, 2011년의 <언문외전>, 작년 2013년의 <아리랑>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은 경기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소리극들이나 간혹 <정가극>이라는 이름의 황진이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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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 정가극 <영원한 사랑>의 한 장면 |
새로운 이름의 정가극이란 또한 어떤 장르인가?
일반적으로 소리와 극을 기본 요소로 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장르를 창극이니, 또는 소리극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주로 <창극>은 판소리와 연극적 요소의 결합이란 의미로 굳어져 버렸고, <소리극>의 의미는 주로 경기, 서도소리와 연극의 조화를 이르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장르, 곧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정가를 기반으로 하는 극은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정가를 기본으로 하는 극이라는 의미에서 <정가극>이 그런대로 설득력 잇는 이름이다. 그래서 국립국악원에서도 <정가극, 선가자 황진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여기서 정가라는 음악은 초야에 묻혀 거문고를 비껴 타고, 유유자적하면서 세월을 낚던 선비들의 노래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노래를 소리극으로 올린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짐작해 보더라도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앞서는 노래라 하겠다.
다시 말해 재미가 없는 느린 노래가 정가이고, 체면을 차리던 양반의 노래로 감정을 절제하며 앉아서 부르는 노래가 곧 정가인데, 그 느림의 상징인 가곡, 가사, 또는 시조를 중심으로 하는 정가극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은 국악계의 공통된 기우였다.
정가의 연창법이란 것도 그 느짓한 노래를 혼자, 또는 여럿이 돌려가며 부르는 좌창(坐唱)의 형태가 기본이기 때문에 이는 창자(唱者)의 몸동작을 제한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자연적으로 정(靜)적인 노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창형태로는 정가의 인간문화재가 아니라, 신령이 내려와 부른다 해도 애호가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정가를 전문으로 하는 보존단체나 개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작업이 바로 정가극이었으나, 다행이 음악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이러한 공연형태가 시도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아니 그 발상 자체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길이어서 크게 환영받을 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