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내가 죽으면 시체가 왜놈들의 발끝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 달라.”고 유언 할 정도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제에 단호했습니다. 1936년 2월 21일 57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숨져가면서도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지요. 선생이 제국주의에 저항한 죄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출옥 1년 8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건강이 악화되자 일제는 서울의 가족에게 병보석 출감을 통보합니다. 내용인즉슨 권세 있는 친일 인사의 보증을 세우면 가출옥을 시켜주겠다는 제의였으나 선생은 자신의 몸을 친일파에게 자신을 맡길 수 없다고 한 마디로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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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겨레의 횃불 신채호 선생 |
신채호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사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통렬히 비판했는데 특히 일본의 ‘3대 충노’ 곧 충성스런 노예를 신랄히 꾸짖습니다. ‘3대 충노’란 일진회의 송병준, 보부상조직을 통해 일제의 침략의도에 호응한 조중응, 국내 유림계를 일본 권력 내에 복종케 한 신기선을 꼽았습니다. 선생은 이들의 죄상을 밝히고 우리 민족이 ‘저 무리의 속임수 가운데 빠지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선생은 이와 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무리들을 향해 언제나 호되게 나무랐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국민적 과제임을 역설했습니다.
안재홍 선생은 단재의 사상을 두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첫째는 조국의 씩씩한 재건이었고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조국의 민족사를 똑바로 써서 시들지 않는 민족정기로 자유 독립을 이루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선생은 <신대한> 창간사에서 “2천만의 해골을 태백산에 쌓을 지라도 일본과 싸우려는 정신을 놓지 말자.”고 했으며 잡지의 목적은 “독립군 제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잡지 <천고(天鼓)>에서도 일본의 침략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왜놈들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짧은 필봉으로는 도적들을 물리치는 무기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해악을 기록하고 그들의 죄악과 만행을 꾸짖고 알릴 것이다.” 고 했습니다. 오늘은 서슬 퍼런 민족혼을 단 한시도 놓지 않았던 영원한 겨레의 횃불 신채호 선생이 1936년 57살의 나이로 타국의 차디찬 감옥에서 숨을 거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