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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일본군에 의한 제암리교회 학살이 일어났던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733]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일본 중위가 4월 15일 오후에 제암리 마을에 들어와 유시와 훈계를 한다고 기독교도들을 모두 교회에 집합시켰다. 교인 32명이 교회당에 모였으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때 그 중위의 명령이 내려지자 병사들이 예배당을 포위하고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는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예배당에 있던 한 부인은 갓난아이를 창밖으로 밀어내고 병사들에게 ‘나는 죽여도 좋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 했으나 병사들은 내민 어린아이의 머리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

   
▲ 양민 학살도 모자라 불을 싸지른 일본군의 만행으로 폐허가 된 마을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 제암리 학살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되자 남편일지도 모를 한 유해의 정강이 뼈를 쓰다듬으며 오열하는 전동례 할머니(1982년 9월 25일)

위는 전동례 할머니의 구술기록인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에 나오는 증언입니다. 전동례 할머니는 21살에 남편 안진순을 제암리 학살로 잃고 말 못할 세월을 살아내면서 구술로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을 지으며 통곡의 한을 새겼습니다. 이날 제암리 교회에서 일본군의 만행으로 숨진 사람들은 전동례 할머니의 남편 안진순 말고도 교회안팎에서 모두 29명이 처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본군 중위 아리타 토시오(有田俊夫)는 이날 20여 명의 군경을 제암리에 대동하여 민간인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30명을 제암리 기독교 교회당에 모이게 하고는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령하여 참혹한 살상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분노를 사서 4월 17일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W.Schofield)는 현장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어, <수원에서의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보냈지요. 또한 일부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저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와 <저팬 크로니클(Japan Chronicle)>을 통해 학살사진과 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여 상세히 보도한 바 있습니다.

   
▲ 양민 학살이 있었던 제암리교회 터에 세운 기념탑, 저 뒤에 새로 지은 교회와 순국기념관도보인다.

   
▲ 당시 학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며 항거한 소코필드 박사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민간인을 학살한 일본군인들을 처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팬 애드버타이저>의 앨버트 피터 기자는 당시 조선 총독이던 하세가와가 이 사건에 눈감고 있다고 비난했는데 무장도 하지 않고 전투력도 없는 선량한 시민을 죽인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에 대해 반성이 없는 것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도덕적으로 반성할 능력이 없는 자’라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919년 4월 15일 화성시 제암리교회에서 일본군의 대학살극이 일어난 날입니다. 그 살인자가 처벌받지 않았고 일제의 사과도 아직까지 없으니 제암리 교회의 비극은 진행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