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한양도성 톺아보기 <3>에서는 본래 자리를 벗어나서 세워진 혜화문을 둘러보고 성곽을 따라 올라가보는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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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 인근 성벽. 성벽은 있지만 여장은 다 사라지고 없다. |
혜화문을 돌아 올라가면 성안팎에 크고작은 집들이 몰려있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서 몰려든 난민들로 살집을 마련한다고 성곽돌을 헐어다 집의 기초와 기단으로 썼다. 그래도 남아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남아있는 성곽을 살펴보자. 한국의 성곽은 아래에 든든한 지반석을 수평지게 가로로 깔고 그 위에 지상 노출된 부분부터 가능한 큰 돌들을 아래에 쌓고 차츰 차츰 적은 돌들로 쌓아 올라간다.
그 양식은 쌓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으나, 성벽의 돌들을 마름모꼴로 쌓지 않고 장방형의 돌들을 수평지게 쌓는 다는 것이 고구려시기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성곽의 변치않는 철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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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한양도성의 밖이어서 한적한 야산이었던 구릉지들이 서민주거단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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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안쪽으로 산책로가 마련되었지만, 본래는 병사들이 성안쪽을 순찰하던 순라길이었다. 이제는 그 길을 따라 탐방객들이 산책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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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성벽의 바로 앞까지 비탈진 언덕위에도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간다. 본래는 성벽의 밖은 말끔히 정리되어 나무도 큰 나무는 다 잘라버려야 했다. 그래야 외부의 동태를 잘 살필 수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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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다 허물어지고 사라졌던 성벽들이 석축과 여장과 옥개석까지 잘 정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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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동북쪽에 자리잡은 성북동 주택들. 한양도성의 북쪽에 있다하여 성북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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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성의 남쪽으로는 한양도성과 남산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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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치인들의 비밀회합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요정. 성북동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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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북쪽에 난 정문으로 문은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열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에 군사시설이 있다하여 군사시설의 촬영을 엄금하여 문의 전체 모습을 촬영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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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의 여장 위에서 외부를 내려다보는 탐방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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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열려있는 문을 통해 성밖을 둘러보고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는 탐방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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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의 지붕에는 어김없이 건물을 지키는 잡상들이 도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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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의 측면에서 본 성곽과 숙정문의 옆모습. 역시 성문이라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다. |
지금은 숙정문을 남여노소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태종 때는 조선 여인들이 이곳을 드나드는 것을 꺼려 폐쇄하기도 했다. 까닭인 즉슨 이곳이 음기(陰氣)가 강해 최고의 기도처라고 소문났기 때문이다. 좋은 기도처라는 소문도 소문이려니와 여자들이 기도를 핑계대고 집 밖으로 나도는 것을 극히 꺼리던 조선의 음습한 분위기를 오늘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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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