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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정치적 식견이 컸던 조선의 명재상 ‘황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758]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역사상에 국가 민족을 위하여 끼친 공적을 말하자면 설총 선생의 이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문익점 선생의 목화재배, 김장 선생의 회례편람, 국방에는 양만춘, 을지문덕, 이순신 장군이요, 정치 식견에는 황희, 정도전, 이이, 정약용, 박지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삼천리》 제7권 제3호 (1935. 3. 1)에 나오는 “선구자를 우러러 위대한 사상의 큰 어른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치적 식견에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황희 선생(1363년 ~ 1452)은 의정부(議政府)에 24년간 있으면서 일처리는 사리에 따르고 규모가 원대하여 대강(大綱)을 들면 세목(細目)은 저절로 열려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 명재상 황희와 황희가 말년에 갈매기와 벗한 파주 반구정


태종 때부터 세종 때까지 임금의 보살핌과 신임이 매우 중하여 대소사(大小事)를 막론하고 궁중 안의 비밀스러운 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반드시 공을 불러 자문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특히 태종으로부터 “공신은 아니지만 나는 공신으로서 대우했고, 하루라도 접견하지 못하면 반드시 불러서 접견했으며, 하루라도 좌우를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중대한 일을 논의할 때에는 면전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어 그 뜻을 굽히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꿋꿋한 모습을 보인 황희 선생은 조선조 최장수 재상으로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던 역사의 격동기였습니다. 춘추관을 비롯해 사헌부 감찰, 형조·예조·병조·이조의 정랑 등 중요 관직을 두루 맡은 명재상으로 활약했지만 재산의 축척 없이 청백리의 삶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주 반구정(伴鷗亭)에서 갈매기를 벗 삼아 여생을 보낸 그를 두고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춘 명재상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지금 새삼 황희 정승이 그리운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