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기자]
▲ 해체이전의 미륵사지 서탑
▲ 미륵사지의 조감도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무왕이 선화공주와 사자사로 가는 도중 이곳 용화산 밑을 큰 연못을 지나다. 갑자기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행차를 멈추고 미륵불에 예불을 드린 후 선화공주가 미륵불을 모실 사찰을 짓도록 무왕에게 건의하여 이곳에 절을 짓게되었다고 한다.
미륵사는 익산시 금마면 용화산(미륵산)아래 자리한 백제시대 사찰로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의 그 어느 절 보다도 그 권역이 넓고 컷던 절로 발굴조사 결과 판명되었다. 미륵사는 3원가람(중원, 동원, 서원)으로 절의 권역을 3구역으로 나누어 각 권역마다 금당과 탑으로 구성하고, 각각의 권역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근정전 처럼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 서 석탑의 해체후 모습(현재)
▲ 해체한 석탑의 돌들
▲ 미륵사 주변에 흩어져 있던 동탑의 돌들
미륵사가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 연유는 불교의 미륵신앙에 근거하는데 미륵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였으나 석가모니 부처님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미륵이 세상을 뜨기 전에 미륵에게 수기하기를 미륵은 다음 생애 이 지상에 미륵불이 되어서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지금 세상을 떠난 뒤에는 불교의 윤회관에 따라 다음에 부처로 오기전 준비단계인 색계의 한 하늘인 도솔천에서 보살로 환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도솔천은 이세상에 오기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윤회의 단계로 석가모니부처님도 도솔천에 있다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륵은 이세상에 다시 오게 되면 어렵고 험난한 이세상을 미륵 불국토로 만들고,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한다고 한다. 그 방편은 미륵불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용화3회의 설법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1회 설법시마다 수 많은 중생들이 성불하게 되고, 3회를 통하여 모든 중생을 성불시킨다는 것이 미륵신앙의 요체다. 미륵은 도솔천에 있을 때는 미륵보살이었다가, 이 지상에 오게 되면 미륵불이 되는 것이다.
▲ 복원한 동탑주변의 돌들을 수습한 모습
따라서 미륵사를 3개 권역으로 나눈 이유는 3회의 설법을 할 장소가 모두 이곳 미륵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다시 역사속에서 찾아보면, 삼국시대 말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영토싸움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때, 백제인은 백제가 미륵불국토라는 신앙적 바탕에서 백성들의 백제왕실에 대한 믿음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고구려나 신라에 대하여는 백제가 바로 불국토이니 결코 넘보지 말라는 엄포도 깃들여 있는 것이다.
비록 미륵사가 창건된 후 오래지 않아 백제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지만, 미륵신앙만은 사라지지 않고 백제의 영토에 많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미륵신앙에 관한 사찰들이 주로 백제지역에 많이 남아있다. 우리가 지금도 큰 사찰로 가꾸고 있는 속리산 법주사, 모악산 금산사, 논산의 관촉사, 도솔산 선운사 도솔암, 화순 운주사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수 많은 미륵신앙의 자취가 있다.
▲ 해체수리 중인 서탑과 동탑
▲ 복원한 동탑의 모습
▲ 동탑과 동탑앞에 있는 당간지주
▲ 미륵사지 동탑의 복원한 모습
▲ 동탑의 측사면 모습
뿐만 아니라 국보 83호로 지정된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나, 일본의 국보1호인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등이 모두가 백제인의 신앙의 결정체이며 그 예술적인 승화로 보는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의연하게 서있던 미륵사는 조선조에 들어서 폐허가 되어갔고, 화재에도 끄떡 없던 석탑마져도 헐려나가 주변 주택들의 주춧돌 기단석이 되어 해체되어갔다. 그리고도 일제때까지 남아있던 돌무더기들을 일인학자들이 수습하여 허물어져가던 미륵사서석탑의 형태를 괴기스럽게 복원해서 오늘까지 전해졌다.
문화재청에서는 수많은 논의와 회의를 거쳐 남아있던 석탑을 연구하여 본래 미륵사9층석탑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 하여 동탑을 복원하였고, 서 석탑은 완전히 해체하여 삭은 돌은 새로운 돌로 다듬어 교체하여 본래 해체전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기 위하여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라의 불교유적이 그런대로 잘 남아있는 반면, 백제의 불교유적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그것이 역사의 뒤안길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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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