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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비우는 일은 슬기로움이다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12] 수학의 무소유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란 말이 있다. 본래부터 있었던 물건은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갈 때도 역시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라며 말한다.  

영원히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총각에게 왜 그렇게 혼자 사나?”하고 그 이유를 물으니 나에게 여자가 없으니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내 여자 아닌가?”라고 답한다. 노숙자에게 왜 집이 없이 노숙하고 지내나?”고 물으니 내가 가진 땅과 집이 없으니 이 세상 땅과 집이 다 내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답한다. 마치 이들은 이미 무소유의 개념을 아는 것 같다. 


   
▲ ≪버리고 떠나기≫, 법정, 샘터사, 2001

법정스님은 버리고 떠나기에서 잃는다는 것이 잘못된 것도 나쁜 것만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크게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전체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려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 정서가 불안정해서 삶의 진실과 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모습니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다. 

우리가 무엇을 갖는다는 것은 한편 소유당하는 것이면, 그만큼 부자유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가질 때 우리들의 정신은 그만큼 부담스러우며 이웃에게 시기심과 질투와 대립을 불러일으킨다.

- 법정, 버리고 떠나기, 샘터, 1993, 233~234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효형출판, 2014
 

이것이 바로 공집합의 본질이다. 공집합은 자신이 완전히 비워 있으므로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서현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다음과 같이 바퀴통의 예를 들어 비움의 쓸모를 말한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에 연결돼 있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 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있음으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효형출판, 2003, 75
 

빈 마음 그것은 삶의 완성이다 

수에 있어서 ‘0’도 무소유를 상징한다. ‘0’이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 곧 비어 있는 것이다. ‘0’은 인도의 상인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그것이 수로 인정되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0’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 어느 수에 더해도 영향을 주지 않지만 독을 품으면 곱하기(X)라는 연산자로 모든 수를 일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만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만족은 어디서 나오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 있을 때 나올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많은데 갖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만큼 불만스러울 것이다. 이것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나타낼 수 있다. 

만족 = 소유/원함 

여기서의 원함은 물질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것도 포함한다. 원하는 것이 많을수록 만족 지수를 높이려면 그만큼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만족 지수는 높아진다. 원하는 것이 없다면 곧 ‘0’이라면 만족 지수는 최대가 된다. 결국 우리의 행복은 비우는데 있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우는 것을 두려워한다. 잃은 것 같고 놓치는 것 같고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많이 비워져 있는 그릇이 큰 그릇이고 많이 비워 있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비운 만큼 많이 채울 수 있고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움을 실천하는 길은 무엇일까? 물질적으로 많이 갖지 않음도 중요하지만 실은 정신적인 비움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법정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혼자 있음을 중요시 했다. 

홀로 있는 시간은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라. 그렇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맹목적인 겉치레의 흐름에 표류하고 만다. 홀로 있어야만 벌거벗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성찰할 수 있다. 이래서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다.

- 법정, 버리고 떠나기, 샘터, 1993, 200 


   
▲ 비우면 어떤 것이라도 채울 수 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홀로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을 통해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디언들이 미국인과 조약을 맺으면서 한 말을 담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을 보면, 자연을 사랑하고 절대자를 숭배하며 인간의 생명 뿐 아니라 모든 자연의 생명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고귀한 이상을 볼 수 있다. 자칭 문명인이라고 하며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인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야만인이며 이교도라고 하여 그들의 땅을 강제로 탈취하고 학살을 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고 그들을 마구잡이로 살생하고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미국인 중 누가 야만인일까?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현대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홀로서기를 시켰고, 명상을 하게 하여 홀로 깨닫게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땅을 침략해 자신들을 내쫓고 자신들을 거의 멸종시키고 강제로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한 그 주옥같은 말을 들어보면 홀로 있게 하는 그들의 교육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묵연 스님은 <빈 마음 그것은 삶의 완성입니다>라는 시를 통해 아무것도 갖지 않은 공집합의 본질을 잘 말해준다.  

빈 방이 정갈합니다.
빈 하늘이 무한이 넓습니다.
빈 잔이라야 물을 담고
빈 가슴이래야 욕심이 아니게
당신을 안을 수 있습니다.  

비어야 깨끗하고 비어야 투명하며
비어야 맑디 맑습니다.
그리고 또 비어야만 아름답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빈 마음이 좋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비워지지 않아서
산다는 일이 한없이 고달픈 것입니다  

터어엉빈 그 마음이라야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벗는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라야만 당신과 나
이해와 갈등의 어둠을 뚫고
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빈 마음 그것은 삶에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