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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오늘의 독립문은 우리에게 무얼 시사하는가?

   
▲ 정면에서 본 독립문. 독립문의 앞에는 돌기둥이 서있다. 그 돌기둥은 중국의 사신들이 올때 꼭 거쳐서 왔다고 한다.

   
▲ 북악산쪽으로 본 독립문

   
▲ 옆에서 경사지게 본 독립문

   
▲ 옆에서 경사지게 본 독립문

   
▲ 독립문이라 새겨진 홍예돌문

   
▲ 독립문 가운데 무지개 문 아래에 고가도로가 있고, 그 고가도로 밑에 서있는 돌기둥은 영은문의 기둥돌이다.

   
▲ 독립문 옆 잔디밭에는 비둘기들이 노닌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구한말 1895년 갑오개혁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개혁을 외쳤지만 이미 청나라와 일본의 눈치와 간섭으로 자주적인 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학혁명은 백성이 스스로 일어나 나라를 살리고자 하였으나 이미 스스로 개혁할 힘을 갖지 못한 조정은 자꾸만 외세의 간섭으로 자주성을 잃어만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인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자주국가의 개혁을 이루기 위하여  1897년독립협회를 만들고, 이 협회를  중심으로 남의 나라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의 의지를 표현하고자 전국민이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세운 것이 화강석 홍예문이다.

이런 문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을 모본으로 하여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본래 이곳에 는 영은문이 있었고 그 자리에 있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지었다.

'영은문'이라 함은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생각하지 못하던 조선에 중국의 사신들이 오고 갈 때 마다 드나들던 문으로 조선은 중국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지어진 문으로 화강석의 돌기둥에 목조지붕을 한 문으로, 현재 한국 사찰의 일주문 같은 문이었다.

이런 영은문을 헐어내고 서양의 신식문물을 받아들여 개화도 하겠다는 뜻을 담아서 세운 것이다.  비록 프랑스 개선문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은 문이지만 당시로서는 이 또한 큰 건립사업이었다.

당시 설계자는 스위스계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였으며 한국인 '심의석'이 시공하였다.문의 높이는 14.28m 너비는 11.48m 이며 문의 중앙에는 화강석 홍예를 설치하였다.

현재 독립문의 앞에는 지금도 본래 독립문의 자리에 있던 영은문의 돌기둥이 독립문을 장식하듯 서있다. 영은문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곳이 본래 영은문이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