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신의 스승 고 참판 신이항로(李恒老)는 세상을 담당할 학문으로 서양 외적이 창궐하는 때를 당하여 병든 몸을 수레에 싣고 나와서 상소한 대의(大義)가 수십 조목이었습니다. 마침 나랏일이 혼란스러움으로 인하여 비록 정령(政令)에 시험해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한결같은 지극한 정성으로 불쌍하게 여기고 선을 열고 악을 막는 고통스러운 마음과 피맺힌 정성은 옛날에 질정해 보아도 의심이 없고 백세를 지나도 의혹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면암 최익현선생문집 3권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사직하는 소 무진년(1868, 고종5) 10월 25일"에 나오는 글이다. 면암은 여기서 이항로 선생이 자신으로 인해여 모함을 받고 있는 것을 애석해 하고 있다.
▲ 화서 이항로의 영정
▲ 이항로 선생 태어난 집 1
이항로 선생 고택은 선생의 아버지 대에 지은 집으로 약 200여 년이 되었으며, 선생이 태어나서 일생을 보낸 곳으로 최익현·홍재학 등 많은 선비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던 곳이다.
이항로는 순종 8년(1808)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고종 3년(1866)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에게 전쟁으로 맞설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였다.
▲ 이항로 선생 태어난 집 2
▲ 이항로 선생 태어난 집 3
건물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채와 대문간에 붙어있는 집으로 주로 하인들이 머물던 행랑채가 있다. 또한 집의 안쪽에 있으며 ㄱ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채가 있어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다.
*있는 곳: 경기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39 (노문리)
*관리하는 곳: 경기도 양평군 문화관광과 031-770-2473
<참고: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