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마을 서쪽 강변에는 공양왕과 관련이 있는 호랑이와 용을 상징하는 돌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동물상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1973.12.24) 제원대교 북쪽 500m 지점에 용석(龍石)이 있고, 그곳에서 100m 떨어진 곳에 호석(虎石)이 있습니다. 이는 고려 후기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피난 내려간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 위치를 정하여 필요한 석물을 준비토록 한 것으로 왕이 개경으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 충남 금산의 공양왕 용호석(龍虎石),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호
용석(龍石)은 소용돌이 모양의 돌기사이에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를 조각하였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 양쪽으로 아가미와 수염이 그려져 있습니다. 호석(虎石)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몸은 서쪽, 머리는 북쪽을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있지요. 털 무늬는 두툼하게 솟은 곡선과 동그라미가 교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동물상은 호랑이나 용의 특징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조각기법이 퇴화한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양왕(1345 ~ 1394)은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세력에 이어 새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뒤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 당하게 됩니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국운을 다하게 되며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로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에서 살해되지요. 고려의 왕가(王家)였던 왕씨는 이성계 세력에 의해 멸족을 당했으며, 강화도로 집결하라는 명을 받아 배를 타고 강화도로 건너가던 중 배를 침몰시켜 많은 왕 씨들이 수장되는 아픈 역사를 겼었던 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