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五六월 또약볕에 살을 찌는 한 더위로 뭇인간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덕이더니 오늘이 립추(立秋), 제 그러케 심하던 더위도 이제부터는 한거름 두거름 물러가게 되엇다. 언덕우 밤나무가지와 행길옆 느티나무위에선 가을을 노래하는 매암이 소래도 차(寒)가고 아침저녁 풀숲에는 이슬이 톡톡하게 나려 인제 먼 마을 아낙네의 옷 다듬는 소리도 들려올것이요. 삼가촌(三家村) 서당아해들의 글읽는 소리도 랑낭히 들려올 때다. 옛날부터 오늘로서 따밑에 잠겻든 궁음(窮陰, 겨울의 마지막)이 더위를 쫏고 올르는 날이라고 하고 또 가을은 서방금기(西方金氣, 가을 기운)라 숙살(肅殺, 쌀쌀한 가을 기운이 풀이나 나무를 말려 죽임)스런 기운이 대지에 흐른다 하며 (줄임) 오늘 아침쯤 그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젓는지 정히 궁금하다."
위 글은 동아일보 1938년 8월 9일 “지하의 궁음(窮陰)이 나와 염제(炎帝,무더위)를 쫓는다” 기사인데 마지막 단락의 “어느집 우물가에 오동잎새가 떨어지는지 궁금하다”는 말이 참 정겹습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지요. 이제 절기상으로는 가을철로 들어서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절기로 봅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이를 대궐에서 쓰고, 조정 대신들에게도 나눠주었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를 보면 입추까지는 날씨가 무척 무더웠음을 말해줍니다. 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고 하여 무더위에 고생한 것을 위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 연꽃 위의 저 잠자리는 가울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림 운곡 강장원 한국화가)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고 농촌도 한가한 때지요. 그래서 이때를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5월이 모내기와 보리 수확으로 매우 바쁜 달임을 표현하는 “발등에 오줌 싼다.”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에서 입추는 절기 입추와는 상관이 없고, 송곳 추(錐)를 써서 송곳 하나 세울 여지가 없음 곧 송곳조차 세울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뜻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