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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주경야독’ 끝에 백성을 위해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25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繞舍循除皆種菊  집둘레와 섬돌 근처 온통 국화 심었더니
   開窓隨處可看花  창문 열면 곳곳마다 국화꽃 만발했네
   번嫌堆岸黃金色  꽃더미 언덕 이뤄 황금색이 넘쳐나니
   却似貪錢富貴家  돈만 아는 부자라 남들이 욕할는지




위는 조선 중기의 문신 잠곡(潛谷) 김육( 金堉, 1580~1658)의 “국화”라는 한시입니다.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청렴한 성품을 지녀 집안에 온통 국화가 핀 것도 돈만 아는 부자라고 욕할 것을 걱정할 정도였지요. 김육은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다섯 살 때 이미 천자문을 외우고, 12살에 “육송처사전(六松處士傳)”과 “귀산거부(歸山居賦)”를 지어 글솜씨를 뽐낸 천재소년이었습니다.


   
▲ 잠곡(潛谷) 김육( 金堉) 초상화(왼쪽, 실학박물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대동법 시행기념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

그런데 김육의 삶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주경야독(晝耕夜讀)”입니다. 1613년부터 1623년 인조반정 직전까지 경기도 가평의 잠곡에서 식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의 밑바닥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그만치 10년 동안을 말입니다.  처음에는 살 집이 없어 굴을 파고 헛가래를 얽어 살았고 낮에는 나무하고 저녁에는 송진으로 불을 밝혀 책을 읽었지요. 김육은 광해군 때 세상이 어려워지자 몸을 숨겨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그는 주경야독하던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였는데 1638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자 대동법(大同法)과 균역법의 시행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김육은 대동법의 실시가 백성을 구제하는 방편이면서 나라 재정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시책이라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지만, 효종을 설득하여 효종 2년에는 호서지방, 효종 9년(1658년)에는 호남지역에도 대동법이 실시되도록 했습니다. 그런 그가 죽자 효종은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을 정도였지요. 직접 농사를 지은 경험으로 진정 백성을 위한 정책을 고집스럽게 펼쳤던 김육 같은 사람은 지금 찾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 김육이 농사짓던 시절, 선조 부마가 찾아왔지만 태연히 밭을 갈았다.(그림,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