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들은 일제에 여러 가지 형태로 투쟁했습니다.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있는가 하면, 교육운동으로 배달겨레가 깨어나도록 한 분도 있고, 목숨을 건 만세운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언론을 통한 “일장기 말소” 투쟁도 있었지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쥔 뒤 가슴의 일장기를 1위에게 주어진 월계수로 가렸고, 이를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손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하여 배달겨레의 기개를 보여주었습니다.
▲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살사건의 동아일보(왼쪽), 베를린올림픽 시상대에서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 선수
일장기가 선명한 사진이 전송되어 왔을 때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우고 기사를 내보냈는데 조선중앙일보의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인쇄가 잘못된 것인지 일부러 지운 것인지 구분이 모호했기에 총독부의 검열을 무사히 넘겼지요. 이 사실을 안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도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인쇄 상태가 조선중앙일보보다 좋았기 때문에 일부러 일장기를 지운 사실이 발각되었고 연달아 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 말소도 들킬 수밖에 없었지요.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기자들은 경찰에 체포당하였고,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탄압을 받아서 정간에 들어갑니다. 동아일보는 10달 뒤 다시 발행할 수 있었지만, 조선중앙일보는 총독부의 압력과 신문사 내부의 문제가 겹치면서 끝내 폐간하고 말았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기자들은 일장기 말소에 대한 명확한 처벌규정이 없는 덕에 풀려났는데 대신 신문사에서 잘릴 수밖에 없었지요.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이길용은 6.25 때 납북 당했으며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여운형은 1947년 7월 암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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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장기를 말살하여 보도한 1936년 8월 13일치 조선중앙일보 사진(왼쪽),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 여운형 선생(가운데), 동아일보 말살사건의 이길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