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사람이 처음 뱃속에서 잉태되었을 때는 누구나 하늘로부터 똑같은 천품을 부여받지만, 뱃속에서 10달을 지내면서 사람의 좋고 나쁜 품성이 형성된다. 따라서 사람의 품성이 결정되는 처음 10달의 태교가 출생 뒤의 교육 보다 중요하다.” 이 말은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 1739∼1821)가 1800년(정조 24)에 아기를 가진 여자들을 위하여 한문으로 글을 짓고, 아들인 유희(柳僖)가 음의(音義)와 언해를 붙여 1801년(순조 1)에 펴낸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나오는 것입니다.
《태교신기》는 모두 10장으로 나누어 있는데 제1장 “지언교자(只言敎字)” 곧 “자식의 기질적인 병은 부모로부터 연유한다.”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제10장에서 “추언태교지본(推言胎敎之本)” 곧 “태교는 남편에게 책임이 있으니 부인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맺습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태교를 권장하기 위한 교육지침서로 일찍이 태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정립하였다는 데 그 뜻이 있지요. 또 이 책은 언해본으로도 펴냈는데 19세기 초기의 우리나라 한자음과 근대국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 1739∼1821)가 쓴 《태교신기(胎敎新記)》
이 책을 쓴 사주당은 출가하기 전부터 이미 호서지방에서 군자다운 풍모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집이 가난한 탓에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던 중 22살 연상이면서 3번이나 부인을 맞았던 경험이 있는 유한규에게 시집을 갑니다. 유한규는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쓴 빙허각 이씨의 외삼촌입니다. 또 《언문지(諺文志)》를 비롯하여 100여권의 책을 쓴 실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유희(柳僖)는 그녀의 아들이지요. 아들의 회고에 따르면 남편이 첫날밤 “나의 어머니는 연세가 일흔 둘인데, 눈이 잘 안보이고 화를 잘 내시므로 모시기가 어려울 것이요.”라고 말하자 사주당은 “세상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고 했습니다.”라며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음은 물론 늘그막에 목천 현감이 된 남편이 청렴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사주당은 “《여범(女範)》이라는 책에서 전해오기를 옛날의 현명한 여인이 임신을 하면 반드시 태교를 하여 몸가짐을 삼갔다 하는데 모든 책을 보아도 상세하게 전하질 않고 있어 고민 끝에 이 책을 지었다.”라고 책을 쓴 뜻을 밝힙니다. 그녀는 또 태교를 이론으로만 다루지 않고 몸소 임신 중에 그대로 실천해보았다지요. 사주당은 평생 자식 교육을 제일의 관심사로 여겼는데 임종 직전 자신이 쓴 모든 책을 불태워 없애면서도 《태교신기》만은 집안의 여성들이 반드시 읽어봐야 될 책이라 생각하여 남겨두었습니다. 사주당은 남자만이 군자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이른바 유교적 남녀관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당당히 여성으로서 군자의 삶을 살았으며, 여성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려웠던 시기에 여성 지식인으로서 고군분투했지요. 사주당 그녀는 사임당 신씨나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 선생에 견줘 결코 모자람이 없는 여성 군자입니다. 사주당이 《태교신기》를 통해 주장한 “스승의 가르침 10년이 어머니의 뱃속 교육 10달만 못하다.”는 말은 현대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귀담아 들을 내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