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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소설가 ‘김동인’, “천황폐하 아래서 조선과 일본은 형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831]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아베 씨 내 좋은 아이디어가 있소 / 광복 두 시간 전 총독부 학무국 / 동인이 찾아간 사무실 안 침묵이 흐른다 / 아 아베 씨 좀 보소 / 그걸 만듭시다 / 시국에 공헌할 작가 단을 꾸리자구요 / 아베, 머리 절레절레 흔든 뜻은 / 이런 쓰레기 같은 조선놈 /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부하기에 바쁜 조선놈 / 어서 꺼졌으면 싶었겠지 / 그리고 두 시간 뒤 조선은 빛을 찾았다.” (뒤 줄임)

이는 이윤옥 시인의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에 나오는 ‘김동인’ 시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104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스런 날 “국치일(國恥日)”이지요.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을 가리켜 “초기 근대문학의 확립과정에서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 류의 계몽적 교훈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줏대 없이 총독부에 빌붙어 광복 2시간 전까지 아첨을 했던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소설가 김동인, "천황폐하 아래서 우리는 한 형제"라고 하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자 이제는 내선일체도 문제가 안 되었다. 지금은 다만 일본시민일 따름이다. 한 천황폐하 아래서 생사를 같이하고 영고를 함께할 백성일 뿐이다(중간 줄임)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련다.” <뒤 줄임> 이 말은 1942년 1월 23일 <매일신보>의 “감격과 전장”이라는 글에서 김동인이 보여준 망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후안무치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버지 김동인의 소설 한부분만 가지고 친일행위로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낸 것이지요, 그러나 2010년 11월 26일 재판부는 김동인의 친일 행위를 다음과 같이 인정했습니다. “김동인은 1944년 1월 16일부터 1월 28일까지 매일신보에 ‘반도 민중의 황민화-징병제 실시 수감’을 10회 연재했고, 20일 ‘일장기 물결-학병 보내는 세기의 감격’ 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징용을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했다. 당시 매일신보는 유일한 우리글 일간지로, 게재 횟수가 11회에 이르는 점 등을 비춰보면 김 씨가 전국적 차원에서 징용을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나라 팔아먹는 짓을 서슴없이 한 일제강점기 예술인의 행태를 정확히 직시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