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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향기 듬뿍 담긴 ‘송편’…'정'으로 빚고 ‘정'으로 먹는다

[김영조의 한국문화 재발견]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왔더니 가래떡, 올려놓고 웃기떡, 정들라 두텁떡, 수절과부 정절떡, 색시 속살 백설기, 오이 서리 기자떡, 주눅 드나 오그랑떡, 초승달이 달떡이지.”, “정월보름 달떡이오 이월한식 송편이오 삼월삼짇 쑥떡이로다 사월팔일 느티떡 오월단오에 수리치떡 유월유두에 밀전병이라 칠월칠석에 수단이오 팔월가위 오려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새알병요 섣달에 골무떡이라 이처럼 우리 겨레는 노래 속에도 떡을 불러들일 만큼 생활화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한가위 때는 햅쌀로 빚는다는 신도주(新稻酒, 햅쌀로 빚어먹는 술), 녹두나물, 박나물, 토란국, 송이국은 물론 고지국(호박, ,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들로 끓인 국) 같은 명절음식이 있었지만 한가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송편이다. 

손바닥에 굴리고 굴려 새알을 빚더니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조개 입술을 붙이네
금반 위에 오뚝오뚝 세워 놓으니 일천 봉우리가 깎은 듯하고
옥젓가락으로 달아올리니 반달이 둥글게 떠오르네.
-김삿갓의 송편예찬 시- 

   
▲ 송편 빚기(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전에 우리 겨레는 송편 하나 만드는 데도 온 정성을 기울여 빚었다. 송편의 종류를 보면 송편 속에 넣는 소에 따라 꿀송편, 밤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따위가 있으며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의 감자송편이 있고, 이밖에도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따위가 있다.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깔아 맛과 향을 더했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 정도 많이 들어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도 좋다고 하니 예부터 벌써 이러한 것을 알고 송편을 해먹은 조상의 슬기로움이 돋보인다.

 
문헌 속의 송편을 비롯한 떡 이야기  

문헌에 송편이야기를 찾아보면 먼저 1680년 무렵에 쓰인 글쓴이를 알 수 없는 조리서 요록(要錄)송편은 백미 가루로 떡을 만들어 솔잎과 켜켜로 쪄서 물에 씻어낸다.”라는 내용이 보이고,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송편은 멥쌀, 콩으로 만든다.”는 내용도 있다. 1809년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가정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송편 빚는 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흰떡을 골무떡보다 눅게 하여 쪄서 많이 친다. 가루가 묻지 않고 굵은 수단(水團)처럼 비벼 그릇에 담고 떼어 얇게 소가 비치게 파고, 거피팥에 꿀을 달게 섞고, 계피·후추·건강가루를 넣어 빚는다. 너무 잘고 동그랗지 않게 크기를 맞추어 버들잎같이 빚어 솔잎을 켜켜로 얹고 찌면 맛이 유난히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펴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재증편(再蒸餅)’흰떡을 쳐서 그것으로 송편을 빚어서 다시 쪄내어 냉수에 씻어 먹으면 질기고 단단하여 좋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궁중 의궤 가운데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는 각색 송병(松餠)’이 나온다. 재료를 보면 찹쌀 1, 멥쌀 8, 검은콩 7, 대추 2, 2, 2, 들깨 3, 계핏가루 1, 미나리 1, 숙제육(熟猪肉(숙저육)) 8, 묵은 닭 2(), 표고 2, 석이 2홉 등이 쓰였다. 보통 송편처럼 콩, 대추, 밤 등을 넣은 것과 육류와 채소를 소로 넣은 것을 함께 만들어 각색 송병이라 한 듯하다. 조선 말기에 나온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흰떡을 쳐서 개피떡 밀듯 얇게 밀어 숙주, 오이, 채소 등으로 소를 넣고 허깨비 떡처럼 만들되, 송편만큼씩 빚어 다시 쪄서 씻어 낸 다음 기름을 발라 초장에 먹는다.”고 하였다.
 

숙종, 송편 그릇 내동댕이치다 

   
 
송편에 얽힌 숙종임금의 재미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밤 숙종은 미행으로 남산골을 순시하였다. 밤이 깊은데 어딘가에서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소리를 좇아가 보니 한 오막살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창 사이로 방안을 엿보니 젊은 남편은 글을 읽고, 아내는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젊은 선비 내외의 모습은 비록 가난해보였지만 행복한 듯 했다. 조금 지나자 남편이 책을 덮고 속이 출출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벽장 속에서 주발 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꺼내 남편 앞에 내놓았다. 선비는 반가운 듯 얼른 한 개를 집어먹더니 두 개째 집어 들었다. 그러자 숙종임금은 시장하기는 마찬가질 텐데 아내에게 먹으라는 소리도 없이 저만 먹는 남편이 인정머리 없게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남은 송편 하나를 입에 물고 아내의 입에 넣어 주는 것이 아닌가? 숙종은 부부의 닭살스러운 금실에 감동하여 부러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나인을 불러 송편이 먹고 싶다고 하자 부산을 떤 끝에 큰 수라상이 들어오고 큰 푼주(큰 대접처럼 생긴 도자기나 옹기로 된 그릇)에 송편을 높다랗게 괴어 전후좌우의 옹위를 받으며 야단스럽게 들어오지 않는가. 눈앞에 그리던 어젯밤의 환상은 깨져 버리고 울컥 화가 치민 임금은 불현듯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하고 송편 그릇을 내동댕이쳤다. 그래서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하는 일화가 흥미롭다.

 

송편을 맛있고 예쁘게 빚으려면 

송편을 만들려면 우선 멥쌀을 물에 담갔다가 빻아 고운체에 내린다. 물을 끓여서 소금을 넣어 쌀가루에 고루 뿌려 반죽한 뒤 오래 치대어 말랑하고 매끄럽게 만들어 마르지 않도록 젖은 헝겊을 덮어 놓는다. 소는 거피팥이나 동부, 녹두와 햇콩, , 대추, 곶감, 들깨, 참깨 등을 넣는다. 거피팥으로 소를 하려면 팥을 불려서 껍질을 벗겨 무르게 찐 다음 어레미에 내려 꿀과 계핏가루를 넣고 섞는다. 동부나 녹두도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햇콩은 껍질째 삶아서 콩알만 까놓고, 밤은 날로 껍질을 까서 잘게 썰거나 설컹하게 삶아도 된다. 대추나 곶감은 씨를 발라내서 잘게 썰어 놓고, 깨는 볶아서 빻아 설탕을 섞어 놓는다.

   
 
빚을 때는 반죽을 직경 2~3cm 굵기의 막대처럼 늘여서 한 개 빚을 만큼만 떼어 손바닥에 놓고 동그랗게 굴린다. 가운데 엄지손가락을 넣어 돌리면서 우물을 파고 소를 채워서 위를 입술처럼 아물린다. 빚는 이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 가지각색인데 조가비처럼 빚기도 하고 밤톨처럼 작고 앙증맞게 빚거나 손가락 자국을 깊게 내거나 크게는 아이 주먹만 하게도 빚는다. 시루에 빚은 송편과 솔잎을 켜켜로 놓아 쪄낸 후에 찬물에 담가 솔잎을 떼고 참기름을 발라 둔다. 

차례 상에 올릴 때는 편틀(떡을 괴는 굽이 높은 나무 그릇)에 송편을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 꾸밈으로 올려놓는 웃기떡으로 삼각형의 골무송편을 색색으로 얹는다. 골무송편은 골무만 하게 작게 빚는데 반죽할 때 쑥을 넣으면 푸른색, 송기(松肌, 소나무의 속껍질)를 넣으면 붉은색, 치자를 넣으면 노란색의 색송편을 만들 수 있다. 웃기 송편으로 꽃송편도 있다. 매화꽃이나 나뭇잎, 새를 아주 작게 빚어 대꼬치나 이쑤시개 등으로 송편 위에 물을 바르고 살짝 눌러 붙인다. 치자로 노란 물을 들이고, 쑥이나 모시풀로 녹색을 내고, 맨드라미로 분홍 물을 들여 만들었다.  

오곡이 탐스럽게 익어 풍요로운 결실을 맺는 팔월 한가위에 햅쌀로 정성껏 빚은 송편은 차례 상에 올려 조상께 예를 갖추기도 했지만 온 식구가 함께 송편을 빚으며 웃음꽃을 피웠던 한가위 으뜸 음식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겨레의 떡이다. 요즈음은 번거롭다고 사다 먹는 집이 많지만 올 한가위 때는 한번 색색깔의 송편을 빚어 이웃과 나눠 먹어보면 어떨까? 우리 속담에는 귀신 듣는데 떡 소리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뜻은 듣고 썩 좋아할 이야기를 그 사람 앞에서 한다,”는 말인데 귀신이 아니라 이웃에게 내가 먼저 떡 소리를 해보자. 그러면 이웃도 나에게 떡 소리를 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집, 우리 사회가 떡 해먹을 집안(떡을 해먹을 정도로 넉넉하고 여유 있는)”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