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조선 후기 시인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펴낸 《추재기이(秋齋紀異)》는 특정한 인물 일흔한 명의 범상치 않은 삶과 활동을 시로 읊고, 그 배경을 이루는 구체적인 사실을 간결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이 책을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가 현대어로 옮겨 2010년 한겨레출판을 통해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책의 첫장에는 “은덩이를 양보한 홍씨와 이씨(讓金洪李)”라는 제목의 일화가 나옵니다.
한성 오천(梧泉, 현재 수표동 근처)에 사는 이 씨는 몇 대에 걸쳐 부자로 살다가 가산을 탕진하여 살던 집을 홍 씨에게 팔았습니다. 홍 씨가 이 집을 보수하다가 집안에서 은덩이 오천 냥이 나왔지요. 그러자 새 주인 홍 씨는 원주인 것이라 생각하여 불러다 돌려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원 주인 이 씨는 그 은덩이가 자신의 것이란 증거도 없을뿐더러 이미 판 집이니 자기 것 일 리가 없다며 사양했습니다.
▲ 은덩이를 놓고 서로 상대방 것이라고 하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결말이 나지 않자 이들은 관아에 알려 임금에게 보고가 됩니다. 이에 임금은 “우리 백성 가운데 이렇듯 어진 사람이 있구나! 지금 옛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하랴.”라고 말하고는 은덩이를 절반씩 나눠가지라고 하면서 두 사람에게 모두 벼슬을 내렸습니다. 조수삼이 《추재기이》 첫머리에 이런 이야기를 올려놓은 것은 배금주의 생태가 만연했던 한양에도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라고 옮긴이 안대희 교수는 말합니다.
“이 씨네 조상이 전해준 금전을 / 홍 씨네가 어떻게 차지하느냐며 / 은덩이를 사양한 홍 씨도 / 양보한 이 씨만큼 어질구나! / 임금께서 그들을 표창하여 / 각박한 세태를 일구었으니 / 이웃 나라 몇 곳에서 / 농토를 다투는 일 그쳤을까?” 조수삼은 책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배금주의(拜金主義) 곧 돈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행태는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지금이 더할 텐데 과연 요즘도 은덩이를 서로 사양하는 사람이 있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