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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묵계월에겐 연습이 생활이었고, 생활이 곧 연습이었다

[국악속풀이 178]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묵계월이 소리를 배우기 위해 주수봉(朱壽奉)에게 찾아갔고, 2년 후에, 주 명창은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그녀를 최정식(崔貞植)에게 보냈다는 이야기, 최정식은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작사, 작곡한 당대 속요(俗謠)계를 주름잡던 거성이었다는 이야기, 소질이 있고 재주가 있는 제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폐습이 잔존해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일반적인 생리이거늘, 자기가 아끼는 제자를 큰 선생에게 보내주는 주수봉이라는 명창의 넓은 마음이나 결단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최정식의 스승은 아호가 학강(鶴崗)인 최경식 명창이었는데 당대 대명창으로 그에게 배우지 않은 사범급 명창이 없을 정도였으며 제자들에게 결코 월사금을 받지 않은 사범으로 유명했다는 이야기, 학강의 제자로는 최정식,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이 있지만, 선생 앞에 오랫동안 소리를 배워서 선생의 뒤를 이은 명창이 바로 벽파 이창배 사범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러므로 주수봉을 통해 묵계월이 만나게 된 최정식은 당대 최고의 학강 선생의 제자였고, 학강은 그 윗대의 장계춘, 그리고 그 윗대의 추교신으로 이어진 경기소리의 정통파 계보인 것이다.

우리가 경기소리의 계보를 말할 때, 흔히 <추, 조, 박>이라는 이야기를 화두로 삼는데 다. <추>는 추교신(秋敎信)이라는 명창의 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추교신은 남녀창 가곡을 잘 불렀다고 한다. 다음 <조>는 조기준(曹基俊)이다. 가곡과 12가사에 능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박>은 박춘경(朴春景)으로 가사, 시조, 잡가를 잘 불렀다고 전해지는 사람들이다.

특히 추교신의 소리는 장계춘을 통해 최경식으로 이어졌다. 장계춘은 추교신 뿐만 아니라 조기준의 가곡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최경식의 소리는 최정식이나 이창배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주수봉 선생은 묵계월을 2년여 가르치다가 최정식에게 보냈는데, 그 최정식의 스승이 바로 최경식, 최경식의 스승이 장계춘, 장계춘의 스승이 바로 추교신과 조기준이 되는 것이다. 최정식은 묵계월을 지도한 후에 안비취도 가르쳤다.

 

   
▲ 제자 임정란 명창(왼쪽)의 소리에 장단을 쳐주는 묵계월 선생

한편 최경식의 또 다른 사범급 제자로는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정득만, 김순태, 이창배 등이 있는데, 특히 벽파 이창배는 1920년대 초, 원범산(元範山)에게 시조와 가사, 그리고 경서도 잡가를 배운 다음, 학강에게 본격적으로 시조와 가사 등 경기소리 전반을 배운 수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50년대 종로3가에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웠고, 경서도 소리를 체계적으로 오늘에 이어준 명창이다. 그의 문하에서 최창남을 위시하여 황용주, 백영춘, 박상옥, 김국진 등 남창 소리꾼들과 임정란를 비롯하여 이춘희, 김금숙, 김혜란, 김영임, 이호연, 최영숙 등 한국의 문화재급 남녀 경기명창들이 대거 배출된 것이다.

경기민요, 즉 경기지방의 좌창이 1970년대 중반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이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었는데, 이 때 위 벽파의 젊은 제자들 중 남자들은 대부분 선소리산타령의 후계자들이 되었고, 경기민요는 묵계월의 후계자로 임정란, 이은주의 후계자로는 김금숙, 안비취의 후계로는 이춘희와 김혜란 등이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왕 문화재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이야기 하나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일반인들은 목청 좋고 소리 잘하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 소리의 뿌리나 전승과정이 얼마나 올바르게 지켜진 소리인가? 하는 점을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의 소리를 고쳐 자기 임의대로 부르는 소리는 아무리 듣기가 좋다고 해도 원형을 충실하게 계승한 소리가 아니어서 문화재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 여류 3명창이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배경도 그들의 소리가 그만큼 전승계보가 분명하고 오래된 전통을 지닌 소리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경기의 12좌창 중 묵계월 명창이 전수해 주어야 할 곡은 적벽가(赤壁歌), 선유가(船遊歌), 출인가(出人歌), 방물가(房物歌) 등의 4곡, 이은주 명창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달거리 그리고 안비취 명창은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 등이다.

연주자에겐 악기가 좋아야 하듯이, 성악가는 맑고 고운 목소리, 즉 목청을 타고나야 한다. 특히 <판소리>나 <남도의 소리>가 아닌 <경, 서도> 소리야말로 아름다운 목청을 타고나는 것은 기본이다. 묵계월의 목청은 시원시원하고 힘차며 맑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의 목청을 두고 하늘이 낸 목이라고 평한다. 그렇지만 그 시원시원하고 맑은 그 목청도 소리를 갈고 닦으며 얻어낸 결과로서의 목소리이지 노력하지 않은 즉 태어날 때의 목소리 그대로는 아닌 것이다.

묵계월의 목청만이 자랑거리가 아니다. 윗소리와 아랫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넓은 음폭(音幅)을 지니고 있기에 남들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위로 치솟을 때에는 강렬하면서도 역동적인 고음이 듣는 이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아래소리로 내려갈 때에는 편안하고 넉넉한 소리가 안정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하청의 음폭 역시도 훈련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다.

누구든 저절로 음역이 넓어지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끊임없는 훈련과 반복 연습, 그리고 생활화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조건들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경험을 제자들에게 누누히 강조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묵계월 명창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의 소리 역시 스승을 닮아 잔기교보다는 소리의 기본을 충실하게 다지려 노력해 왔다고 큰 제자 임정란은 회고하고 있다.

여하튼 묵계월의 소리는 흔치 않은 그만의 독특한 음악미를 지니고 있는 멋들어진 소리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