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대가야박물관 전경 |
![]() |
||
▲ 대가야를 대표하는 토기모형(박물관 앞에 재현품) |
![]() |
||
▲ 고분발굴장면 목곽의 관이 있고 주변에는 순장자들과 부장품들이 가득하다. |
![]() |
||
▲ 왕릉의 부장품들 재현 곡식과 토기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
![]() |
||
▲ 발굴된 토기들-1 대부분 굽이 있는 받침과 토기들이 제기의 모양을 연상한다. |
![]() |
||
▲ 발굴된 토기들-2 |
![]() |
||
▲ 가야토기상세-1 |
![]() |
||
▲ 가야토기상세-2 |
![]() |
||
▲ 가야토기 상세-3 |
![]() |
||
▲ 토기-4 |
![]() |
||
▲ 토기-5 |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에 전시중인 가야왕릉의 토기들.
나무 널판지로 목곽을 만들고 그 안에 왕과 함께 시중들 시자들을 둘러서 배치하고 그 안에는 저승에서 사용할 수많은 부장품들을 함께 묻었던 가야왕릉에는 가야만의 독특한 형태의 토기들이 함께 묻혀있었다.
고령 대가야는 가야왕국들이 차츰 신라에 복속되는 중에도 최후까지 남아있던 왕국으로 서력기원 400년 경 고령읍을 둘러싸고 있는 지산동의 산의 능선에 700여기의 무덤들이 있으며, 이 무덤들 중에는 가야왕으로 추정되는 능(지산동 73호분)들도 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뒤에도 우수한 철을 생산하여 이를 매개로 무기를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어 이웃한 신라 백제의 틈에서 살아남았으나, 차츰 그 힘을 잃고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이 이룩했던 문화의 독특한 토기는 자신들의 존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