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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묵계월, UCLA 한국음악과에 거금 괘척

[국악속풀이 182]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 주 속풀이에서 묵계월은 왜소(矮小)한 용모에 외양을 가꾸지 않아 목소리로만 만나던 사람들은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TV가 없던 시절 방송국 직원이 그를 알아보지 못해 난감해 하였다는 이야기, 민요를 부르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보낸 지난 날들의 보상으로 ‘세종상’을 비롯하여 국내의 큰 상을 받았고, 1974년에는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그의 소리에는 강약과 명암의 대비가 분명하고, 힘을 바탕으로 하는 역동미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 다양한 창법이나 시김새를 동반하는 선율선에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의 흐름이 남다르다는 점, 외양(外樣)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즉흥적인 표현을 강조하기보다는 사설의 정확한 발음이나 발성 등의 기본기를 강조하였다는 점, 이러한 음악적 태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리고 오뉴월 모닥불도 쬐다 물러서면 섭섭한 법인데, 평생 지켜갈 수 있는 <예능보유자>의 명예를 스스로 내려놓은 아름다운 선례를 남긴 이야기 등도 하였다.

그렇다. 90이 넘고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워도 가족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의 만류로 예능보유자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묵계월 명창처럼 스스로 용퇴하는 결심은 참으로 본받아 한다는 이야기를 많은 국악인들이 하고 있다.

10여 년 전, 어느 날이다. 묵계월 명창으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전갈을 받고 자리에 나가보니 겉봉에는 예능보유자 명퇴청원서라고 쓰여 있는 편지봉투 하나를 전해 주는 것이었다. 밤새 써 보았는데 글이 제대로 되었는가 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열어보니 구구절절이 경기민요를 생각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과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기에 예능보유자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용기 있는 노 명창의 결의에 찬 명퇴서였다. 그때 남겨놓은 자료가 있어 그 일부를 소개해 본다.

“저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의 예능보유자인 묵계월입니다. 국가가 인정해 준 예능보유자의 지위를 명예롭게 퇴진하여 후진에게 물려주고자 청장님께 청원을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1975년, 경기민요의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후, 올해 2004년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의 은덕으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을‘인간문화재’라는 분에 넘치는 대접과 예우를 받으면서 지내 왔으니 진정으로 국가에 감사하고 청장님을 위시하여 문화재청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 팔십하고도 넷이 되고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되어 제자들에게 소리와 장단을 지도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 집니다. 열심히 지도하고 가르쳐 보겠다는 다짐이나 의욕은 마음뿐이고, 몸은 만사가 귀찮다는 생각이 앞서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체력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다면, 그저 <어제가 옛날>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허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중략)

능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나이에 나 좋다고 마냥 보유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국가에 대한 예의나 보유자의 태도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저보다 더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경기민요의 전수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결심아래에 저는 보유자의 자리를 스스로 용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르지 평생을 경기민요와 함께 살아오면서, 항시 경기소리의 발전을 기원해 왔고 이 소리들을 사랑해 온 제 마음의 결단입니다. (중략)

존경하는 문화재청장님 !
더운 여름날 모닥불을 쪼이다가 물러서는 것도 섭섭하거늘, 하물며 국가가 인정해 주신 무형문화재의 보유자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섭섭하지 않다면 이는 솔직한 마음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는 경기민요의 앞날을 위해 당당히 물러나렵니다.”

2004년. 10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였던 이경옥(묵계월)이 문화재청장에게 보낸 명퇴서의 일부이다. 경기소리를 부르며 평생을 살아온 노명창이 체력에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능력이 점점 떨어져 국가가 맡긴 소임을 충실히 할 수 없어 더 이상 후진 양성이 힘겹다고 술회하면서 나 좋다고 마냥 보유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양심고백은 너무 아름다워 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묵계월 명창에게는 또 하나의 본 받아야 할 미담이 있다.

 

   
▲ 미국 UCLA 대학극장에서 심포지움과 공연을 마친 뒤, 묵계월 선생은 이곳에 2,000만 원을 쾌척했다.

바로 미국의 UCLA 민족음악대학에 한국음악과가 폐과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을 때, 때마침 <방일영국악상>에서 받은 상금 5,000만원 중 2,000만원을 선뜻 한국음악과에 쾌척하였다는 사실이다. UCLA 한국음악과는 한해에 5만 불의 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남의 나라에서 우리 한국의 음악을 심는 일에 동참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꺼이 기탁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LA 현지의 교민, 독지가, 그리고 국내의 묵계월 명창을 비롯한 국악인들의 관심과 후원으로 일단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국가나 기업의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명맥을 유지한다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