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고문이란 말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우리 겨레가 지겹게도 듣던 말이라 신물이 날 지경의 말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고문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있어 흥미롭다. 이름하여 《일본고문형벌사, 나와유미오 지음, 김인호 뒤침, 자작출판》라는 책이 그것인데 이 책을 보면 참으로 잔인한 형벌도 다 있구나 싶은 것들이 많다.
에도시대의 재판은 원칙적으로 ‘자백을 위한 재판’이었다. 따라서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자백이 중요하다. 고문은 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백하면 중형에 처해질 것을 우려한 죄인들은 좀처럼 죄를 자백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혹독한 고문 앞에서는 두 손을 들고 자백하는 게 인간 심리다. 그런데 1836년 반슈의 무주크에 사는 야구로요시코로(八黑吉五郞)라는 남자가 강도혐의로 잡혀오게 되는데 이 사람은 끈질기게 입을 다물었다.
▲ 무거운 돌로 무릎 위를 우르는 고문 장면
담당 순사는 이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려고 1년 9개월 동안 태장고문 15회, 돌안기고문(무거운 돌로 몸을 내리 누름) 25회, 새우고문 2회, 매달기 고문 2회 등 총 44회를 가했는데도 꿈쩍 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성 고문 견뎌내기 1호인 남자였다.
그런가하면 미인이던 후쿠이가네 역시 고문을 참아낸 여자로 꼽힌다. 후쿠이는 참의원이던 히로자와나오미의 첩이었는데 후쿠이와 동침을 하고난 뒤 이 참의원이 1871년 5월 9일 새벽 자택에서 참살된 채 발견된 것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후쿠이로 경찰은 그녀를 잡아다가 무려 4년 7개월간 고문을 했지만 결국 자백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유력한 살해 용의자인 후쿠이의 고문 모습은 당시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매달기 고문부터 채찍 맞는 모습 등 잔인한 고문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끝내 입을 다물어 참의원 살인범은 밝히지 못하고 미궁에 빠져 버렸다. 지독한 여자 1호쯤 되는 인물이다. 《일본고문형벌사》를 읽고 있자니 별의별 고문이 다 있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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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고문, 좌서한 채 엎드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