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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충단공원에 세워진 사명대사상 |
[한국문화신문 = 최우성 기자] 지금으로부터 422년 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사명대사는 살생을 가장 큰 금지하는 불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습을 접고 기꺼이 전쟁을 위하여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불경대신 칼과 창을 들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존엄성을 존중하기에 살생을 금하는 것이지만,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고자 총칼로 무장하고 군인뿐 아니라 무고한 백성을 살육하는 극악무도한 이웃나라 일본의 행패를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견디고서는 부처님의 가르팀도 무의미 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중에 사명당 유정은 그의 사형이었던 휴정 서산대사의 부름을 받고 기꺼이 스님들로 편성된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다. 사명당은 7년간의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후에는, 당시 권세만 누리던 선비 유생들이 겁에질려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던 적국의 나라 일본에 자진하여 건너가, 일본에 붙잡혀갔던 조선의 백성들과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왔으며, 일본에서는 일본의 불교계뿐 아니라 일본의 사무라이들 까지도 감복시키는 대선사로서의 행적을 남기고 왔다.
그가 있었기에 조선의 불교는 500년을 비참하게 탄압받았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조선불교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있어 끊어지기 직전의 한국불교의 선맥이 지금에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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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영정 |
유정 사명대사의 동상는 장충단공원에서 동국대학교로 오르는 언덕위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6환장을 집고서 의연하게 서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저 언덕을 오를 수 있는 것도 420여 년 전에 책대신 칼과 창을 기꺼이 들었던 사명대사의 공이 크다할 것이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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