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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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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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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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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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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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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전경-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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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 담근 메주가 익어가는 중 |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이 넘는 집성촌으로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고장으로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2성씨의 집성촌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본래는 손씨와 이씨 이전에는 오씨와 장씨가 살았던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에 1400년대 말기에 양민공 '손소'가 사위로 들어와 살면서 손씨가 입향하였고, 입향조 손소와 그의 아들 손중돈이 높은 벼슬을 하게되어 마을의 위상이 높아졌고, 이어 손중돈의 사위로 회재 '이언적'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성씨가 입조하였는데 이언적의 이후로는 이씨들이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이언적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던 양동마을은 조선조 후기까지 이씨와 손씨들의 집성촌으로 내려오다가 임진왜란시절에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손엽'이 있었으며, 이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양반과 상민들간의 갈등도 있었고 근대화 이후로는 많은 동네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자 차츰 쇠퇴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870년대에 들어서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농촌의 현실에 양동마을도 큰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우리것을 지켜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기 시작하여 1984년 마을 전체가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양옥건물들의 신축이 제한됨으로 한옥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에 이르러 정부의 보조와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기울어가던 옛 전통가옥들이 차츰 제모습을 되찾게되고 마을 역사를 담은 전시관도 최근에 세워져서 이제는 안동의 하회마을에 뒤지지 않은 양반마을로 자리하게 되었다.
양동마을은 하회마을과는 달리 그 배치형상이 산지 구릉에 자연스러운 지형을 잘 활용하여 가옥들이 배치되었고, 지형의 풍수적 길흉화복이론에도 잘 맞게 되었다고 하여 많은 현대풍수사들도 반드시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그 가치를 뽐내고 있는 양동마을의 깊어가는 가을을 잠시 느껴본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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