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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정조의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곳 '운한각'

 

   
▲ 행궁의 맨 안쪽에 자리한 운한각 전경

   
▲ 운한각과 좌익사

   
▲ 운한각 현판

   
▲ 정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운한각의 내부

   
▲ 정조의 어진, 이루지 못한 조선의 개혁이 너무도 아쉽다. 그런데 어진의 옷차림은 곤룡포를 입고 있는 근엄한 모습이 아니라 군사를 이끄는 대장군의 모습을 담았다.

   
▲ 정조의 어진과 위패를 모시고 나갈 때 쓰는 가마.그러나 한번도 탄적은 없다.

   
▲ 정조의 어진과 위패가 운한각을 벗어날 때 쓰던 일산과 기

   
▲ 운한각을 지키는 지붕위의 잡상신들.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후기 마지막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개혁을 시도했던 개혁군주 정조가 신도시 화성과 행궁과 관아와 백성들이 살아갈 민가를 짓고, 화성의 주변에는 당시우리의 전통축성기법에 세계적인 축성법을 두루 모아서 지은 네모난돌과 흙을 구워만든 벽돌로 지은 5.3km의 성곽과 문루를 지었던 정조.!!

그러나 정조는 49살의 나이로 개혁을 한참 진행하던 중 갑자기 승하하고 말았다. 그가 그리도 허무하게 간 뒤 그의 아들 순조는 화성행궁의 가장 안쪽에 아버지 정조의 어진을 그려서 모실 별도의 사당을 짓고 그 옆에는 혹시라도 발생할 화재시에 어진이 대피할 작은 익사건물도 지었다. 그리고 그 운한각과 익사 사이에는 회랑을 지어 왕의 어진이 행차하는데 눈비를 맞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정조 당시에는 조선조 당쟁의 회오리가 극성을 이루던 시기였고, 영조는 자신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가 그 당쟁의 회오리를 넘지 못하고 한많은 세상을 떠난 뒤 그런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왕다운 왕이 되고자 애썼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왕조의 정치개혁은 한낮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후 조선은 당쟁에서는 벗어났지만, 당쟁보다 더한 외척 세도정치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후로는 왕가의 외가집인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판이 되었고, 결국 그것으로 조선은 마지막을 향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후대에 왕이 될 왕자의 비를 누구로 할 것이냐를 가지고 암투가 끊임이 없었고, 한 번 왕비가 된 집안은 다시는 왕비가문의 위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극심한 쟁투를 하였던가?

그러나, 정조가 개혁을 위해서 한양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화성도, 갑자기 승하한 정조가 떠나 버리자 국운이 기울고, 돌보는 사람도 없어지니 차츰 폐허가 되어갔고, 일제 강점기가 도래한 뒤로는 그가 애써 이룩했던 행궁의 건물들도 다 철거되고 그곳에는 관립학교와 백성을 괴롭히던 경찰서 행정관청등이 들어섰다.

이런 한 많은 세월을 보내고 다행이 광복이 되었지만 어수선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화성을 돌볼 겨를이 없는 5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서야 화성성역의궤 등을 참고하여 옛날의 본모습을 이만큼나마 복원해 놓았다.

화성행궁을 돌아보면 대부분 화려한 정문과 중문 정전격인 봉수당의 주변만 돌아보고 간다.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굳이 이곳 운한각까지 들러보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곳이야 말로 화성을 있게 한 장본인을 영원히 모시는 뜻깊은 곳이다.

행궁의 화려한 새건물들만 둘러보고 갈 것이 아니라, 깊숙한 이곳까지 들어와 정조의 뜻을 새겨보고 가는 것이 화성행궁을 찾는 의미를 더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