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요즘 근현대박물관에 가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공부했던 교실이 보이고 책상과 걸상, 칠판과 석탄난로는 물론 교복 그리고 주판이 보입니다. "432원이요, 578원이요, 933원요, 721원이면?" 예전 학교 교실이나 주산학원에서 낭랑하게 들려오던 선생님의 목소리입니다. 주판을 보면서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 추억의 주판과 주산 문제집
고대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에서 일찍이 주판 같은 계산도구를 썼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쓰던 주판 “애버커스(abacus)”는 대리석 판에 홈을 내서 작은 구슬을 늘어놓은 형태였다고 하지요. 그 뒤 실크로드를 타고 애버커스가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중국인들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만든 ‘죽산’이란 것을 계산도구로 사용했는데, 죽산의 대나무 살에 구슬을 꿰어 ‘주판(珠板) 또는 산반(算板)’이라 불리는 중국식 주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애버커스와 달리 계산을 하다가 떨어뜨려도 구슬이 쏟아질 염려가 없었던 중국인들의 슬기로움이었습니다.
중국의 주판은 5진법을 기본으로 한 것으로 위 칸에는 구슬 2 개를 놓고, 아래 칸에는 5개를 놓았는데 위 칸의 구슬 하나는 아래 칸의 구슬 5개에 해당하지요.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위 칸 구슬 1개를 생략해버렸고 아래 칸의 5개 구슬도 다 올리면 위 칸의 1개를 내렸습니다. 상업을 발전시킨 일본인들은 아래 구슬을 5개에서 하나를 줄여 4개로 하는 게 더 편리함을 일찍 깨달아 결국 지금과 같은 주판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 우리 겨레가 옛부터 썼던 산가지 (위)와 알이 7개였던 옛 주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산가지(또는 산목)”란 것을 써서 셈을 했는데 조선 선조 때에 이르러 중국의 주판이 들어왔지만 크게 쓰이지는 못했습니다. 이 주판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었으며, 1936년 보성전문학교에서 처음으로 주산경기대회가 열리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지요. 1950년대에는 상업학교에 주산과목이 채택됐고, 1960년대에는 국민학교 산수교과서에 수록된 뒤 암산과 연결되면서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여 한때 유행했지만 계산기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 서울 등 대도시에서 컴퓨터게임과 슬기전화(스마트폰)에 중독된 어린이들을 치료하고 또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