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음악의 범주에 포함되는 기악, 성악, 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음악의 개념은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만이 아니라 시나 사를 노래하는 성악, 무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개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였다. 기악과 성악, 춤 등이 각기 독립적으로도 존재할 수 있지만, 원래는 한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라는 이야기도 하였고, 가야금 악사 우륵선생이 신라의 3제자에게 그의 음악을 전해 주면서 한 사람은 악기, 또 한사람은 노래, 그리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춤을 지도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전통은 조선조 이후,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왕가 시절의 아악부나 국립국악원의 국악사 양성과정에서도 기악 전공자들에게 성악과 춤을 가르쳐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러한 배경은 악의 개념이 악, 가, 무 일체라는 점을 확인하며 생활 속에서 함께 익혀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 제1호가 바로 <종묘제례악>인데, 바로 이 음악이 기악, 성악, 춤 등으로 구성된 대표적인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속풀이에서는 종묘제례악에 대하여 개략적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조의 역대 임금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서울의 종로 3가, 종묘에서 이분들을 위한 제례시 연주하는 음악을 통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종묘제례악이란 악곡의 이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종묘에서 제사음악으로 쓰이고 있는 음악을 일컫는 포괄 명칭이고, 실제로 연주되고 있는 악곡의 이름은「보태평(保太平)」이라는 악곡과「정대업(定大業)」이라는 악곡인 것이다.
이들은 각기 짧은 11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사의식 순서에 따라 그 쓰임도 다르다. 구체적으로 보태평은 초헌례에 연주되는 음악이다. 초헌례란 즉 첫잔을 올릴 때에 연주하는 음악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제사를 지낼 때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데, 이 첫째 잔의 의미는 조상의 문(文)이나 덕(德), 즉 정신적 업적을 칭송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대업은 둘째 잔과 셋째 잔을 올릴 때 연주된다. 그 의미는 무(武)와 공(功), 즉 외적인 업적이다.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기편성은 편종, 편경, 당피리, 대금, 아쟁, 해금 등의 선율악기와 북이나 징과 같은 타악기들의 합주음악으로 연주되고 있는데, 연주되는 위치나 악기 편성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가령 큰 북이나 징, 태평소와 같은 소리 큰 악기들은 정대업 연주에만 편성되고 보태평 연주시에는 편성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종묘제례악은 관현타악기들의 합주음악이면서 한문시를 노래하는 <도창>, 즉 성악도 포함하고 있으며 <8일무>라는 의식무를 64명이 추고 있어서 악가무의 종합연출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종묘제례악에서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문무(文舞)를 춘다.
원래, 보태평과 정대업이란 악곡은 세종17년(1435)에 지어진 음악이다. 조상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조상이 세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찬양하는 뜻에서 지어진 악곡이었다. 이 때 지어진 음악은 「보태평」이나 「정대업」 이외에도 「발상」이나「봉래의」「여민락」 등 새로운 악곡들도 창작되었다.
이 중 보태평과 정대업이란 악곡은 그 뒤 세조시대에 와서 개작을 한 후에 종묘의 제례음악으로 채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종 때에는 제례의식에 쓰려고 만든 음악이 아니었다. 궁중의 회례의식, 곧 조회나 외국사신을 위한 국가적인 행사나 의식에 쓰였던 음악이었는데, 세조시대에 와서는 가사의 의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외형을 개작하여 종묘의 제사음악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종묘의 제사음악은 세종 때 짓고 세조시대에 와서 고쳐진 보태평과 정대업인 것이다. 약 600여년 나라의 의식음악으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전해오고 자랑스러운 유산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조시대에 와서 개작되었다고 하는 점, 즉 세종시대에 창작된 보태평과 정대업의 악곡이 세조시대에 와서는 어떻게 고쳤으며 어떤 점들이 달라졌을까?
첫째는 낮은 음계에게 높은 음계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보태평의 경우는 (G)에서 黃(C)으로 4도 가량 높아졌고, 정대업은 (A)에서 황으로 단3도 가량 높게 조옮김 된 것이다. 둘째는 악곡의 수를 줄였다. 정대업의 경우는 15곡에서 11곡으로 축소시켰다. 셋째는 각 악곡의 길이를 원래의 악곡보다 짧게 만들었다는 점이고, 넷째는 악장이라고 하는 노래 가사의 자구(字句)를 줄인 점이다. 그러나 가사의 원 뜻은 그대로 살리고 있는, 즉 최초의 창작정신에는 변화가 없는 개작이어서 외양의 변화를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고쳐진 보태평11곡과 정대업 11곡은 세조대에 와서 종묘제례악으로 채용이 된 디, 조선 전기로 구분되는 선조 임금 전까지는 종묘에서 충실하게 쓰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종묘의 제례는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음주에 계속)
▲ 종묘제례악에는 종묘악장(宗廟樂章)도 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