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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일제침략을 옹호한 반역자 스티븐스를 처단한 '장인환"

[한국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30분경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정거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한국민족운동사상 첫 의열투쟁이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장인환(張仁煥, 1876.3.10~1930.5.22)과 전명운(田明雲), 두 의사가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 ns)를 총살 응징한 것이다.

스티븐스가 일본 정부와 한국 통감부의 특별 밀명을 띠고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페리 정거장에 도착,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에 들어서려는 순간 역사적인 의거가 일어난 것이다. 육혈포라 불리던 권총을 들고 대기 중이던 전명운 선생이 먼저 앞으로 다가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실탄이 총열과 맞지 않아 불발하고 말았다. 이에 그는 총대를 잡고 총두로 스티븐스의 얼굴을 맹타하고 돌아서 달아나려 하였고, 스티븐스는 그를 뒤쫓아 잡으려 하였다. 이 순간 스티븐스의 뒤에서 역시 권총을 품고 기다리던 장인환이 세 번 방아쇠를 당겼다.

 

   
 
첫발은 스티븐스와 전명운이 뒤엉켜 움직이는 바람에 빗나가 도리어 전명운의 어깨에 관통상을 입혔고, 제2발은 스티븐스의 등을 명중, 허파를 뚫었으며, 마지막 한 발도 역시 스티븐스의 허리를 뚫어 그 자리에 쓰러뜨렸다. 치명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틀 뒤 25일에 절명, 두 의사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전명운은 치명상은 아니어서 치료 후 퇴원 구금되었다.

장인환 [1876~1930] 선생은 1876년 3월, 평안남도 평양군 대동면에서 아버지 장명구(張明九)씨와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어렵게 생활하다 여의치 못하여 1904년 그의 나이 28세 때 하와이에 노동이민으로 도미하였다.

   
 

그 뒤 1906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된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의 회원이 되었으며, 주로 철도 노동자와 알래스카 어장에서 노동 등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08년 3월, 당시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있던 스티븐스가 일제의 대한제국 외교권 강탈로 인해 국제여론이 악화되자, 일제의 지령으로 자신의 본국인 미국에서 대한제국의 무능력을 적극 홍보하고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선전활동을 펴고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신문기자들에게 을사늑약을 비호하고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동포 대표들을 만난 스티븐스는 방자하고 무례한 태도로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을 충신이라 하고, 침략의 괴수인 이등박문의 있음이 한국과 동양의 행복이라 하고 한국의 인민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등 폭언과 궤변을 서슴지 않았다.

이미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그 어떠한 성토와 반박만으로 그를 공격한다는 것은 전혀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생각한 선생은 스티븐스의 죄악을 징계하고 한국민의 자주독립 정신을 세계만방에 떨치고자 그를 저격하기로 결심하였다.

드디어 1908년 3월 23일 아침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선창에 도착하자 그를 향해 총을 겨냥하려 할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스티븐스를 향해 권총을 쥔 채로 돌진하여 놀란 스티븐스와 격투가 벌어졌다. 그 남자는 전명운(田明雲)의사로서 스티븐스를 처단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하였으나 불행히도 불발이 되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권총을 연속 세발 발사하여 두발이 스티븐스의 가슴과 다리에 명중하였고, 한발은 전명운의사의 어깨에 맞았다.

전명운의사와 스티븐스는 출동한 미국 경찰에 의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거를 성공시킨 선생은 곧 구속되었다. 한편 총탄세례를 받은 스티븐스는 3월 25일 병원에서 사망하였으며, 장인환선생은 1908년 12월 미국 법정에서 징역 2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국가보훈처는 2008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자료: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