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지금 창녕하면 우포늪이 유명하지만 1927년 10월 14일치 동아일보의 <경남 1위, 창녕>에 보면 ‘우포늪’은 없고 화앙산 일대의 유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창녕읍내 주산인 화앙산 서쪽 송현(松峴)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미륵상이 있는데 높이가 4척 6촌 (139cm)으로 경주 석굴암불상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360여 년 전 것으로 여겨지는 신라 진흥왕 22년에 강역(疆域) 개척 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척경비석(拓境碑石)이 있는데 이는 북한산과 함경도에 세운 비석과 때를 같이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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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7년 10월 14일 창녕 탐방기가
이 밖에도 화앙산성, 영산산성, 태자봉, 보림사와 같은 명승지와 함께 경남 창녕군 영산면 원다리길에 있는 만년교(萬年橋)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를 층층이 쌓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는데 물에 비친 아름다운 다리는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다리 위로는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얇게 흙을 깔아 다리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노면은 곡선을 그리며 양 끝을 길게 늘이고 있어 다리의 분위기를 한결 아늑하게 해줍니다.
이 다리는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고쳐 쌓은 것으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건너다닐 만큼 튼튼할 뿐 아니라 홍수 따위에도 끄떡없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다리는 마을의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리며 1972년 3월 2일자로 보물 제564호로 지정된 다리입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는 이 다리를 만든 석수장이가 백진기(白進己)이며 이후 다리 보수를 맡은 사람은 김내경(金乃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리 하나에도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한 석수장이의 예술 감각이 돋보이는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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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만년교> 다리 (문화재청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