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누에들은 배가 고파서 모가지를 높이 쳐들어 내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에 뽕잎을 듬뿍 집어서 확 뿌려 주었다. 누에들은 좋아라고 뽕잎을 소나기 소리를 내면서 먹었다.” 이는 이광수의 <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뽕 따러가세. 정든 임 따라서 뽕따러 가세.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다. 정든 임 따라서 뽕따러 가세. ”와 같은 아산지방 민요에서 보듯이 누에치기는 예부터 여성의 노동과 관련지어 나타납니다.
누워있는 벌레라는 뜻의 누에는 중세어형은 “누웨 누에”였으며 예전의 누에치기는 국가재정과도 관련 되는 것으로 궁중에서는 왕비가 손수 누에를 쳤던 친잠단(親蠶壇)이 경복궁에 남아있습니다. 또한 누에의 넋을 달랜 선잠단(先蠶壇)도 성북동에 있으며 남산의 서쪽 끝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해서 잠두(蠶頭)라 하고 뽕나무를 많이 심었지요. 특히 세종대왕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한양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蠶室)들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 뽕잎을 먹고 있는 누에(왼쪽)와 고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누에와 관련하여 《유양잡조속집》에 보면 “방이설화”가 나옵니다. 방이 형제는 신라 사람으로 형 방이는 가난하고 동생 아우는 부자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형이 너무 살기가 어려워 동생에게 누에고치를 얻으러 갔는데 아우는 누에고치를 삶아서 주었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가 부화하여 10여일 뒤에는 황소만한 누에가 되었는데 이를 시기한 동생이 이를 죽여 버리자 이번에는 사방 100리 안의 누에들이 모여들어 형 방이는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양잠에 의한 재산증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겨레는 예부터 누에와 깊은 관련을 지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모두 옛 이야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