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 “경칩”으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나온다는 날입니다. 중국 후한시대 반고가 쓴 역사서 《한서(漢書)》에 보면 원래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했었는데 뒤에 한 무제의 이름인 계(啓) 자를 쓰지 않으려고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습니다.
《태종실록》 15년(1415) 1월 4일 치 기록에 충청도 도관찰사 정역(鄭易)이 보고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생(生)을 좋아하고, 사(死)를 싫어함은 사람과 사물들이 같습니다. 전(傳)에 말하기를 ‘갓 나온 벌레는 죽이지 않고, 갓 자라나는 풀은 꺾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이제 무지한 농부들이 경칩으로 만물이 소생하는 때를 당하여 불을 놓아 전답을 태우는데 산과 들에까지 연소되어, 드디어 모든 벌레가 다 타죽게 만드니,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화기(和氣)를 손상시키는 한 가지 일이니, 원컨대 이제부터는 경칩 이후에 방화함을 일절 모두 엄하게 금지하소서.”
▲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옛 사람들은 경칩 때쯤이면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함부로 불을 놓아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벌레들을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인데 이는 선조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는 것이지요. 또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해왔습니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되는데 이날 시골에서는 개구리(또는 도롱뇽) 알을 건져다 먹으면 몸이 건강해진다고 해서 어린 생명들이 수난을 겪기도 했지요. 또 이때는 고로쇠나무(단풍나무, 어름넝쿨) 물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전남 구례의 송광사나 순천 선암사 일대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유명합니다. 벌레도 깨어난다는 경칩, 우리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봄을 맞이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