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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96년 전 간도 용정의 만세운동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966]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3월 13일, 보통학교 왜놈교장이 반일군중대회를 거행한다는 소식을 탐지하고 전교학생을 교실 안에 가두어 놓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늘땅을 울리는 '조선독립만세!'의 구호 소리를 듣자마자 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팔을 휘두르며 '만세'를 외치면서 유리 창문을 부수고 뛰쳐나와 거리에 달려가 시위 행렬에 참가하였다. 이 광경을 본 왜놈교장은 저도 모르게 '10년 교육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되었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이는 <독립신문>1920년 1월 1일 기사입니다.

1919년 3월 1일, 조국의 산하에서 일제 침략에 저항하고 조선이 자주민임을 선포한 우리겨레의 함성은 중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동포사회에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물론 고국의 3·1 만세 운동 이전부터 중국 각지에는 항일우국지사들이 모여들어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지속했습니다만 특히 고국의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월 13일에 간도 용정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되어 우리 겨레의 뜨거운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습니다. 간도의 3.13 만세운동 1년 전인 1918년에는 간도의 대부(大父) 김약연 선생을 중심으로 여 준·정안립·박성태·박찬익 등 38인이 고국의 3·1독립선언서보다 빠른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 간도 독립운동의 주역 김약연 선생

   
▲ 1919년 3월 13일 간도용정의 만세운동에서 희생된 학생들 무덤

3월 13일에 일어난 간도지역의 만세운동으로 공덕흡, 박상진 등 수많은 동포가 희생을 당하자 3월 17일, 용정의 각계인사들은 의사회를 조직하였고 3천여 명의 애국청년들과 동포들은 용정에 집결하여 희생된 열사들의 시체를 메고 가두행진을 하면서 희생된 열사들을 추모하고 일제의 탄압에 항거했습니다. 용정의 3.13 항일시위 운동은 이후 간도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훈춘, 화룡, 개산툰, 삼도구 등 북간도 각 지역에 들불처럼 번져 5월 1일까지 30여 곳에서 항일시위가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간도지역의 3.13 항일만세운동은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봉오동, 청산리전투로 이어지는 도화선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96년 전 간도지역에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당긴 간도 3.13 만세운동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