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가 쓰던 칼에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장도(粧刀)가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장도 하나씩을 품에 지니고 다녔지요. 호신과 함께 장식용으로 장도를 차는 풍습이 생긴 것은 고려 때부터인데,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널리 보편화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혼인을 축하하거나 어른이 된 것을 기념하여 장도를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받는 이를 온갖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지요.
장도는 일상생활에 쓰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거나 치레(장식)의 구실도 하는데, 부녀자가 정절을 잃을 위험이 닥쳤을 때는 장도로 자결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장도는 패도(佩刀), 운검(雲劍), 패검(佩劍)이라고도 불렸는데 이 가운데 보통 허리 따위에 차는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특별히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은 낭도(囊刀)라 했지요. 또 모양으로 볼 때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칼의 모양이 반달처럼 굽어있는 모양의 패도와 칼이 일직선인 운도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 장도(粧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도는 칼자루, 칼날, 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때 칼날의 길이는 3~5치(1치 약 3.03cm) 정도이며, 강한 쇠를 20여 차례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단련해야 좋은 장도가 됩니다. 칼집과 칼자루는 먹감나무, 대추나무 또는 대모[玳瑁, 거북이의 하나로 등딱지는 공예품에 쓰임], 물소뿔, 금은 따위로 만듭니다. 이때 벼락 맞아 말라죽은 대추나무로 만든 것을 최상품으로 치지요. 최남선은 《고사통(故事通)》에서 남녀의 옷고름에 장도를 차는 것은 몽고풍습이 들어와서 유행한 것이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