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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翰西) 선생님, 무궁화 사랑을 기억합니다

백년편지 - 권용우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한서(翰西) 선생님, 무궁화 사랑을 기억합니다 -권용우-
 

 45, 이 날은 선생님께서 타계하신 날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도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신 채 19394576세를 일기로 영면하셨습니다. 올해가 선생님의 76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선생님의 삶은 참으로 파란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청소년기에는 외세의 물결이 거세게 몰려들 때였습니다. 18824월 미국과 한미 수호조규(美修好條規)와 한영 수호조약(英修好條約)의 체결을 시작으로 하여, 7월엔 한일간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 8월에는 한중 상민수륙무역장정(中商民水陸貿易章程)이 체결됨으로써 외국의 선진문물이 조선땅을 뒤덮었습니다. 한편, 188410월에는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에 의한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인하여 청()() 두 나라의 군대가 충돌함으로써 나라의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형국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써 이들 두 나라의 조선에 대한 주도권 싸움은 우리 조정(朝廷)을 참으로 곤욕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습니까. 18941월에 전라북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한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 전국적으로 민심이 어수선하였습니다. , 그 해 7월에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한 갑오변란(甲午變亂)을 시작으로 일본의 내정간섭이 우리 조정을 옥죄어 왔으며, 친일 성향의 김홍집 내각을 앞세워 내정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 이듬 해 10월에는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지휘한 일본군에 의해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말미암아 국내의 정세는 참으로 어수선하였습니다.  

18989,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어수선한 가운데서 나수연(羅壽淵)류 근(柳瑾)윤치호(尹致昊) 등과 함께 황성신문(皇城新聞)을 창간, 그 사장 겸 주필에 취임하여 언론활동에 온힘을 기울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때에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이 애국의 길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 류 근박은식(朴殷植)이 주필로 활약하였으며, 얼마 뒤에는 장지연(張志淵)도 합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당대의 우국지사들로서 투철한 신념으로 민족지(民族紙) 황성신문을 이끌어나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황성신문의 한 가운데서 4년간 사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두 차례나 구속되는 등 일제의 탄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일제를 향한 필봉은 무디어지지 않았습니다. 


무궁화 사랑이 곧 애국  

   
▲ 무궁화 자수도
선생님께서는 언론인으로, 민족운동가로, 교육자로 일생을 살아오시면서, 말년에는 나라의 꽃 무궁화를 심고 이를 보급하시면서 큰 보람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습니다. ‘무궁화사랑이 곧 애국이라는 선생님의 삶은 아마도 19108월 나라가 일본에 병탄되면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신 뒤 배화학당 교사로 활동하시면서부터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때, 선생님께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한반도를 무궁화로 수놓은 자수본을 만들게 하여 애국심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과 국권회복(國權回復)에 대한 교감을 하셨지요.  

무궁화는 영원한 번영을 상징하는 꽃으로서, 우리 민족과는 오랜 세월 친숙한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라가 일본에 병탄된 후 애국지사들이 구국의 표상으로 무궁화를 내세우면서 무궁화는 더욱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로써 무궁화가 부지불식간에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수강산 삼천리에 / 각색 초목 번성하다
춘하추동 우로상설 / 성장 성숙 차례로다
> 중 략 <
오늘 조선 삼천리에 / 이 꽃 희소 탄식마세
영원 번창 우리 꽃은 / 삼천리에 무궁화다
 

이는 선생님이 지으신 무궁화노래의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궁화를 참으로 사랑하셨지요. 이 노래 중에는 특별하다 무궁화는 / 자랑할 말 하도 많다 / 여름 가을 지나도록 / 무궁무진 꽃이 핀다라는 구절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무궁화는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7월부터 10월까지 긴 기간 동안 꽃을 피우기 때문에 다른 꽃보다 그 생명력이 참으로 길지요. 이것은 우리 민족의 끈기와도 닮은 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원공원학교 등의 조경에 적합한 식물로 각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 35년간 우리 민족이 수난을 겪으면서 무궁화도 참혹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 한서 남궁억 선생 기도상

그러나, 선생님은 이러한 무궁화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191812, 선생님은 서울생활을 정리하시고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산골마을 보리울로 거처를 옮기시고 민중교화를 이어가시면서 무궁화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회를 짓고, 배움에 굶주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시는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1922년에는 이곳에 모곡학교를 설립하시고, 교정에 무궁화를 심어 어린 학생들에게 나라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무궁화처럼 우리 민족도 영구히 번창할 것이라는 꿈을 심어주셨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비밀리에 우리 역사를 가르치시면서 민족혼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일제의 억압에 짓눌려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동녘하늘에 떠오르는 광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이제 지난날의 어려우셨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무궁화동산에서 평안을 누리시옵소서!

 

   
 
권 용 우 

단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 명예법학박사
단국대학교 교수(1974~2007)
현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주요 저서 : 불법행위론, 민법학논고, 민법학의 쟁점, 민사판례연구1(공저), 의료과오의 민사책임(공저), 북한민법연구(공저), 나의 삶 나의 꿈 외 다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