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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한민족 수난사를 간직한 등록문화재 '철원노동당사'

2002년 등록문화재 22호로 등록

 

   
▲ 당사 정면

   
▲ 당사 전경

   
▲ 당사 현관 포치

   
▲ 당사 뒷면

   
▲ 당사 측사면 전경

   
▲ 당사 계단

   
▲ 당사 현관과 계단

   
▲ 깨어진 계단

   
▲ 진달래 꽃 피어난 언덕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민족의 수난사를 간직한 격전지 철원의 노동당사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46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바로 다음 해 위도 38도로 남북이 갈리고, 소련이 진주한 가운데 지어진 근대건축물이다. 건물은 평면과 입면이 좌우 대칭에 언덕위에 세워진 3층건물로 소련식 근대건축물로 구조체는 철근콘크리트로 기둥과 바닥을 만들고, 내부 방의 칸막이와 외벽에는 벽돌로 하였다.

건물 중앙에 처마가 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넓은 홀이 있고 홀에서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좌우로 복도가 있어 가장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포탄과 총알을 맞아 벽과 지붕은 날아간 곳이 많고, 거의 폐가가 되어 방치된채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상태였으나, 민족의 수난사를 증거할 유일한 건물로 인정되어, 2002년 등록문화재 22호로 등록되었다.

당시 치열한 전쟁통에 살았던 사람들은 저 노동당사가 쳐다보기도 싫고, 빨리 사라져 없어지길 바라기도 할 것이나, 후세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민족의 수난사를 증거하는 교육의 장으로 여겨진 때문이다.  애초에 북한에서 이 건물을 지을 때에는 관할 지역내 각개 리마다 성금으로 백미 200가마를 강제로 할당하여 자금을 마련하였고, 또 건설당시에는  인력과 장비를 강제로 동원하여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사의 중요한 비밀이 새나갈까 염려하여 철저한 공산당원이 아니면 건물 신축에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근처 철원, 김화, 포천, 평강 일대를 관활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수많은 총과 포탄을 맞았으나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숭숭 구멍이 났으나,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당시 근처 다른 건물들이 모두 사라진 것에 비하면 그만큼 견고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철원노동당사에서는 당시 수많은 양민들이 고초를 당하던 곳으로 주민들은 한번 잡혀들어가면 죽어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건물의 뒷편에는 많은 인골들이 묻혀있었다.

지어진지 70년이 되어가는 오늘에 와서 한민족의 분단과 대립의 현실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철원 노동당사의 앙상한 몰골을 둘러보고,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민족의 고난사를 잠시나마 실감해보며 통일의 그날이 언제쯤 올른지 기원하며 감회에 젖어본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